사모펀드·회계법인 법정 공방, 회계사 수난사로만 봐야할까?
2022.12.15 13:22
수정 : 2023.01.13 10:21기사원문
(서울=뉴스1)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 최근 공인회계사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소송이 진행 중이며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건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교보생명보험㈜의 재무적투자자인 사모펀드 4곳이 보유한 풋옵션(특정가격에 팔 권리)의 공정시장가치를 산출하면서, 행사가격을 높이기 위해 회계법인과 재무적투자자가 공모하여 평가 기준일 등을 유리하게 정해 적용했다며 2020년 4월 교보생명이 검찰에 고발하며 시작됐다.
고발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2021년 1월 19일 안진회계법인 소속 관계자 3명과 교보생명의 재무적투자자(FI)인 사모펀드 관계자 2명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였다.
앞서 해당 소송을 이례적이라 한 것은 회계법인의 업무와 관련 '가치 평가'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일에 대하여 사법의 영역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가치 평가'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회계법인의 업무에 대해 검찰이 기소했다는 것은 당사자인 회계법인으로서는 매우 치욕적인 일인 셈이다. 당해 재판과 관련해 1심에서 피고인 안진회계법인 등에 무죄라 판단했음에도 말이다.
여기에서 안진회계법인의 전과(?)를 살펴보면 약 5조원 규모에 달했던 과거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의 한가운데 있기도 했다.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의 외부 감사를 하면서 "회계처리의 부정 내지 오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감사 범위 확대 등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더불어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을 파악하고도 감사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혐의로 소속 회계사들이 기소돼 징역형의 실형을 받았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2001년 에너지 운송 업체 엔론이 15억달러(약 2조원 안팎)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회사뿐 아니라, 당시 외부감사를 했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은 시장의 신뢰를 잃어 2002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면 안진회계법인은 위 사건 이후 이른바 제도 개혁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최대기업인 삼성전자의 외부감사인으로 지정되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분식회계에 연루되었음에도, 심지어 분식회계의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금액이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우리나라의 결과는 완전히 판이한 셈이다.
다시 우리나라 법정에서 벌어진 공방으로 돌아가자면, 사모펀드와 안진회계법인이 244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양자가 결국 소송으로 갈 확률이 높으니 가능한 유리한 방법을 동원해 결과값을 높이자는 내용들이 법정에서 공개됐고, 이에 따라 교보생명 1주당 풋옵션 행사가격을 시장가치 대비 두배 이상 높은 40만9000원으로 높아졌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결국 이번 사건의 본질이 사모펀드가 교보생명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허위의 가치평가를 통해 투자손실을 8000억원대 투자이익으로 둔갑시키려 한 사안으로 본 것이다. 외형상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기소돼 유무죄가 다퉈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총 1조원 안팎의 경제적 이익을 노린 대형 경제 범죄라는 것이다.
필자의 얕은 경험에 기대어 보건대,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감사(audit)의 영역이 아닌 계약 당사자 간의 합의된 절차(agreed upon procedures)에 따르기 마련인 가치평가 용역과 같은 사례에서는 사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안진회계법인의 이번 사례의 경우 전문가 집단에 주어진 '자율적 판단'의 영역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의뢰인과 회계법인이 주고받은 244차례 이메일 내용은 '통상의 의견 교환'이라고 주장하나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봄이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풋옵션의 가치평가와 관련하여 평가기준일을 안진회계법인이 적용한 2018년 6월 30일이 아닌 실제 행사일인 2018년 10월 혹은 11월로 했을 때 가치 변동과 관련한 부분이다. 여러 언론보도에 실린 내용과 교보생명 측의 주장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의 작년 9월과 올 6월 판정에서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와 이에 따른 사모펀드의 주장은 옵션 행사일을 기준으로 가치가 산출돼야 하나 그렇지 않아서 기각됐다는 것이다. 이는 가치평가에 있어 행사일에 근접한 기준일을 쓸 수 있었다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유사하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으로, 교보생명 기업 가치평가와 관련하여 앞서 위에서 기술한 보고서를 베껴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회계법인 소속 회계사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일도 언급해야겠다.
회계법인의 수난사라 말하기 이전에 스스로 최소한의 윤리적 자세를 되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