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해남, 미식 여행의 종착지
2023.03.17 04:00
수정 : 2023.03.17 04:00기사원문
■여행의 시작, 해남은 맛있다
오전 8시 넘어 KTX를 타고 2시간을 지나 나주역에 도착했다. 나주에서 차로 1시간을 더 달리니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첫끼는 해남군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절, 대흥사 인근의 '물레방아식당'에서 먹었다. 단돈 1만원인 '보리쌈밥'에는 구운 돼지고기, 밥, 국, 제철 쌈채소 등 16가지 반찬이 나왔다. 만원 한 장을 추가해 도토리묵 한 접시를 추가하니 넷이 먹기에도 충분했다. 화룡정점으로 '해남 농부가 사랑하는 삼산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켜자 운전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를 채우고 두륜산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높이 1600m의 두륜산은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많은 수종이 산다고 한다. 대형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창 밖으로 농경지가 보이는데 절묘하게도 한반도를 닮아 있다. 케이블카를 내려 나무데크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거야'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을 찍어 생각나는 이에게 보내고 나니, 나중에 다시 한번 해남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밥을 먹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었던 '유선관'에 들렸다. 현재는 찻집과 숙소로 개조해 사용되는 곳이다. 한옥 스타일 카페로 시그니처 음료와 쿠키를 시켜놓고 셔터를 누르니 바로 인스타그램 앱을 실행하고 싶어진다.
■해남 8味 찾아 떠나는 미식 여행
해남군은 다양한 관광 자원과 함께 해남을 대표하는 8가지 맛을 테마로 한 미식여행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해남 8미(味)는 △닭 코스요리 △떡갈비 △한정식 △보리쌈밥 △산채정식 △생고기 △황칠오리백숙 △삼치회 등이다. 대표 메뉴별로 갈만한 식당들이 2~3곳은 넉넉히 있어 무려 20여가지가 넘는 선택지가 가능하다. 선택 장애가 있다면 기차여행 전문 해밀여행사가 추천하는 'KTX로 떠나는 두근두근 해남 미식체험 & 힐링 기차여행'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첫날 첫끼는 보리쌈밥, 저녁은 삼치회를 택했다. 둘째날 아침은 한정식, 점심은 떡갈비 순으로 먹었다. 1박2일의 타이트한 일정이라 첫날 아침, 둘째날 저녁을 제외하니 4끼가 한계였다.
여행의 마지막 한끼를 장식한 '천일식당'은 1924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올해 100살이 됐다. 떡갈비정식은 1인분에 3만2000원으로 제법 비싼 가격이지만 친절한 주인장 아주머니의 인심과 전통을 생각하며 납득하게 된다. 바싹 구워 산적처럼 나오는 떡갈비와 한정식 한상으로 구성된 식탁에서는 젓가락이 저절로 춤을 춘다.
가성비 있는 메뉴를 찾는 다면 '닭 코스요리'를 단연 첫번째로 추천한다. 해남읍에 있는 '원조장수통닭'에서는 7만원에 토종닭 요리를 시키면 닭육회를 시작으로 닭구이·주물럭, 계란, 토종닭 백숙, 죽까지 끝임없이 음식이 나온다. 4인 가족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양이다.
여행 중간의 간식, 혹은 기념품은 해남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빵, 감자빵이 최고다. '더라이스'에서는 갓구운 감자빵, 고구마빵 구매는 물론 1~2시간짜리 만들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해남 미식 여행의 백미는 '정용진 막걸리'로 유명한 해창주조장 투어였다. 해창 막걸리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생 막걸리'라고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알코올 도수에 따라 18도, 12도, 9도 등 다양하다. 12도짜리는 1만6000원 정도에 구매가 가능하지만 18도는 소비자가가 13만5000원에 달한다. 해창주조장 관계자는 "18도 막걸리는 3개월 동안 덧술 과정을 반복하고 온도 관리, 발효에 신경쓴다"며 "출고가만 11만원으로 명절과 가정의 달 등에 선물용으로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땅끝에 접한 바다, 이순신 장군의 향기
해남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치른 울돌목과도 가깝다. 해남 우수영 관광지,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둘러보고 명량 해상케이블카를 옵션으로 고려해 볼만하다. 울돌목은 해류의 흐름이 빠르고 방향이 바뀌어 바다의 표면이 그 어느 곳보다 혼란스럽다. 나선형으로 휘어진 울돌목 스카이 워크에 오르면 투명한 바닥을 통해 바다의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데 빠른 물살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우수영 관광지에서 배들의 역사와 전쟁사 등을 보고 울돌목 스카이워크에 있는 판옥선 전시장의 내부로 들어갔다. 이미 교과서에서 수도 없이 봤던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8글자를 역사의 현장에서 보니 가슴 안쪽에서 찌르르한 기운이 솟구쳐 오른다. 책에서 보면 역사는 단순히 지루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 밟아보면 정신을 깨우는 뭔가가 있다. 무려 1761만명이 본 우리나라 역대 흥행 1위 영화가 '명량'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해남에 왔으니 땅끝마을 관광지를 놓치면 섭하다. 송호해변 카페에서 한적하게 커피를 마시고 땅끝 전망대에 올랐다. 통일 전망대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수많은 전망대가 있지만 역시나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 전망대는 의미가 남다르다. 땅끝 전망대를 거쳐 오르거나 내려갈 때 만나게 되는 땅끝탑도 인증샷 필수 코스다. 땅끝탑 앞에는 '여기는 땅끝 한반도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있다.
2012년 해남군은 땅끝탑으로 가는 길목에 석비를 세웠다. 그 석비에는 "땅끝마을 사자봉 아래에 있는 사자끝,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 이곳에서 사자봉을 향해 소원을 빈 후 조약돌 하나 주어 바다로 던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쓰여 있다. 아무도 모르게 조약돌을 하나 집어 던지고 왔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