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동떨어진 총수지정제 족쇄 풀 때 됐다
2023.07.19 18:10
수정 : 2023.07.19 18:10기사원문
상의의 건의문은 앞서 지난달 말 정부가 동일인 판단기준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행정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동일인 기준으로 기업 최고 직위에 있거나 최대 지분을 보유하거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등 5가지를 명시했다. 이전까지 기준도 없이 정부가 자의적으로 동일인을 정했던 방식과 비교하면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역시 충분치 않다. 경영계 요구는 시대 상황과 동떨어진 제도를 현실에 맞게끔 손보자는 게 핵심이다. 언제까지 외면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총수 지정제의 후진성은 수도 없이 지적됐던 바다. 동일인 지정제가 도입됐던 때가 1986년이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자체부터 기막히다. 40년 전 국가 주도 산업화시대 기업의 독과점 문제는 정부 책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총수 사익편취 등 재벌 체제를 국가가 견제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지금은 산업 토대와 기업 구조가 과거와 같지 않다.
우리는 기업의 혁신과 창의력이 국가성장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기에 살고 있다. 벤처로 출발해 빅테크가 된 기업 창업자들에게 총수 굴레를 씌워 갖은 규제로 무한책임을 지우는 일은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서 총수 1인의 지배력보다 전문경영인과 이사회가 중심이 된 지 오래다. 더욱이 우리가 모델로 했던 일본의 경우 현실에 맞춰 제도를 이미 폐지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총수 지정제를 우리만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총수로 지정되면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친인척의 계열사 지분과 거래내역을 제출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엄격한 형벌이 따른다. 해외 글로벌 기업과 촌각을 다투며 사업에 매진해야 할 기업인들에겐 족쇄도 이런 족쇄가 없다. 1%대 저성장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려면 기업에 날개를 달아줘 훨훨 날게 해주는 것밖에 길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번 발목만 잡는다. 정부는 이를 헤아려 낡은 제도 수술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