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나왔는데 인생 폭망"…사회 초년생의 고뇌
2023.12.20 04:00
수정 : 2023.12.20 04:00기사원문
[서울=뉴시스] 전선정 리포터 =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직업 선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 초년생 유튜버들의 자기 고백이 동년배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17일 서울대 졸업 이후 3번의 인턴과 2번의 정규직 신입 생활을 거친 자기 계발 유튜버 최이솔(28)씨는 '서울대 나오고 인생이 망한 이유'라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친구들은 회사에 잘만 적응해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하는데 나는 졸업한 지 3년 찬데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애인도 없고 인턴만 3번 했는데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1년 만에 또 직무를 바꿨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최씨는 "28살이나 됐는데, 이쯤 되면 어른일 줄 알았는데, 어른은 무슨. 아직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나는 캥거루족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며 예상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어 "아마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러면 성공할 줄 알았으니깐. 잘 살 줄 알았으니깐.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굴곡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서울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방황의 시작이었다"며 '대학 가면 다 해결된다'는 사회통념과는 다르게 대학 입학 후 다른 삶이 펼쳐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인생이 계획대로 척척 풀릴 줄 알았다. 10대까지만 해도 인생이 조금은 계획대로 풀렸다. 변수라고 해봤자 시험 문제가 어렵게 나오는 것, 시험 날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것, 친구들과 관계가 틀어지는 것.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내 통제를 벗어난 수백 개의 변수들이 있었다"며 학창시절과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닥쳐왔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여러 전공과 동아리 활동을 경험한 최씨의 첫 직장생활은 직장인에게 필요한 서비스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 인턴으로 시작됐다. 그 후에는 콘텐츠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커뮤니티 운영에 관심을 생겨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커뮤니티 운영 인턴을 맡게 됐다.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직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진 최씨는 인사팀으로 직무를 전환한 후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리크루터 인턴이 됐다. 이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고객 지원 직무로 정규직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1년 후 다른 직무로 전환해 또 신입이 됐다고 밝혔다.
최씨는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의 방황들에 고마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이상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늘 '왜?'라는 질문을 받았다. '왜 서양학과 학생이 사회복지학과 수업을 듣죠? 왜 미대생이 창업을 하죠? 왜 콘텐츠를 제작하다 커뮤니티 운영을 하죠? 왜 커뮤니티를 운영하다 인사팀에 들어오려 하죠?' 등의 수많은 의문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들었고 그 질문들을 하며 나를 한 발짝씩 알아갈 수 있었다"고 말하며 방황이 자신을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나를 쥐어짜기보다는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며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불안해하고 걱정하겠지만 현재에 집중하며 '오늘'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유튜버 박채린(27)씨는 최근 개인 채널 '채린라벨 Cherry Park'에 '연세대 나온 백수 브이로그…유학까지 다녀온 고학력자가 다 망하고 이렇게 사는 이유'라는 영상을 올렸다. 박채린씨는 커플 유튜브 채널 '채꾸똥꾸'로 유명세를 탔지만 남자친구와 결별 후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영상에서 박씨는 대학에 가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고교생활 힘들게 공부했지만 막상 대학에 와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그 다음부터는 딱히 인생에 기대되는 게 없더라. 왜냐하면 이제 남은 건 취업 준비, 그리고 힘들게 들어간 회사에서 쳇바퀴처럼 일하기 뿐이니까. 어쩌면 진짜 죽을 때까지. 그래서 남들 다 금융권에 취직하고 외무고시도 치고 이러는데 혼자 이상한 길로 빠져서 취직도 안 하고 유튜버가 됐다"고 소개했다.
또 "회사를 아주 잠깐 다녀봤는데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내가 정말 이러려고 고등학교 내내 미친 듯이 공부하고 대학 가서도 마음껏 놀지 못하고 열심히 살았던 건가?"라며 회사 생활이 이전에 생각했던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박씨는 유튜버로써의 성공도 이루고 보니 명문대 진학처럼 장기적인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 좋게도 100만 유튜버가 되고 골드버튼까지도 받고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또 내리막길만 기다리고 있더라. 어쩌면 남은 건 인터넷 방송인으로써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뿐이었으니까. 마치 20살 때 대학에 처음 들어간 후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진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성과라 할 것은 일궈내는데 왜 인생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고민할 찰나에 (남자친구와 결별한 이후) 반강제적으로 백수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인생 계획에는 전혀 없던 반 백수처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이상하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으로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아야지 마음을 먹고 나니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박씨는 더 이상 특정한 조건을 성취한다면 다가올 미래가 행복할 것이라는 조건 아래 '미래의 멋진 나'에 기대는 삶을 살기보다는 오늘의 멋지고 행복한 나에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이어 "대충 오늘만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운동을 가서 무거운 걸 들기 전에 미래의 멋진 나를 상상하며 다짐을 했다면 이젠 그냥 '오늘 이렇게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도 사망하지 않은 내 자신,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졌어' 이렇게 조금 더 예뻐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영상은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내 삶이 걱정된다면 그냥 가끔은 눈을 딱 감고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살아보자"는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명문대 졸업생들의 솔직한 자기고백은 동년배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던 학교에서 벗어나 세상에 첫 발을 디디고 나면 잘 풀리지 않는 고차방정식과도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눈 앞에 놓여지기 때문이다.
전과 다르게 이직을 성장의 기회라고 보는 MZ 직장인들의 인식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20대~30대 남녀 48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이직을 새로운 기술과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 53%가 커리어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응답했다.
누리꾼은 이에 "로스쿨 두 번 다니다 35살 지금 다른 직무로 회사 수습 기간 중이다.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려고 한다",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보내는 시점에서 너무 공감된다", "엄청난 계획형 인간인데 요즘은 한 치 앞도 모르겠고 눈앞의 일만 수습하는 것 같다. 와중에 영상을 보게 됐는데 위로가 된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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