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을 즐길 자유가 소비자 권익인가
2024.06.05 08:35
수정 : 2024.06.05 08:3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줄서는 맛집이라 가봤다. 쇠고기 1인분에 1000원이라니. 갓 잘라낸 빠알간 속살에 실그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마블링은..아! 이건 누가 봐도 1++ 등급 새우살이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공무원들이 들이닥쳤다.
최근 서울시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에서 판매하는 어린이 제품 93개를 조사한 결과 40개 제품이 무더기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서울시가 지난 3월부터 국가기술표준원이 지정한 KC인증 시험기관 3곳과 7차례 조사 끝에 내놓은 결과다.
쉬인에서 판매한 어린이 신발 밑창에선 국내 기준치의 428배, 알리에서 파는 어린이 머리띠에서는 270배에 달하는 프탈레이트계 첨가제가 검출됐다. 프탈레이트계 첨가물은 어린이 성장을 방해하고 나중에는 불임, 조산까지 유발하는 환경호르몬 성분이다. 알리에서 판매하는 점토와 테무의 슬라임 장난감에선 국내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가습기 살균제 성분도 검출됐다. 김경미 서울시 공정경제담당관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검출된 슬라임을 책상 위에 5분 정도 놔뒀는데 목이 따끔거려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4월에는 이들 중국 온라인업체가 판매하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에서 국내 기준치를 최대 700배나 초과하는 카드뮴, 납 등 발암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달 “국민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린이제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을 받지 않으면 직구를 금지시키겠다”고 발표했다가 돌연 사흘만에 이를 철회했다.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일자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직접 대국민사과까지 했다. 국민 건강을 해치는 제품에 대해 정부가 이를 규제하는 게 과연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것인가. 너무 해괴한 궤변 아닌가.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국내외 제품 중 특정 제품을 규제하는 것은 분명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다. 그러나 유해물질 범벅 제품에 가품들까지 버젓이 유통되는데도,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니 규제하지 말라는 것은 정부가 기능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만약 여러 여건 상 관련 뉴스를 놓친 소비자가 가격만 비교해 보고 해당 제품을 선택했을 경우 영문도 모르는 그 자녀들은 발암물질 제품을 써도 괜찮다는 것인가.
법인세를 내며 국가를 믿고 사업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또 어떤가. 중국 발 직구 제품은 2018년부터 KC인증 의무도 관세(8%), 부가세(10%)도 면제받고 있다. 반면 우리 업체들은 깐깐한 국내 규정을 지키면서 품목당 수백만 원에 달하는 KC인증 절차를 거쳐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성분도 모르는 저가 짝퉁 제품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기회조차 잃고 있다.
소비자 단체도 그렇다. 삼성, 현대차 등 국내 기업을 향한 감시의 눈은 부릅뜨면서 유독 엄청난 돈을 뿌려대는 중국 온라인쇼핑몰의 행태에 대해서는 왜 관대할까.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소비자단체들이 중국산 저가-짝퉁 제품과 직접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이쯤되면 중국산 직구 제품에 대한 규제 필요성에 대한 논란은 답이 서서히 보인다. 개인주의에 함몰된 포퓰리즘과 그런 포퓰리즘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정부는 나라와 국민을 더 깊은 수렁으로 이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