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치과 의사와 딸, 욕조서 살해됐지만 죽인 사람은 없다
2024.06.12 05:00
수정 : 2024.06.12 11:15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995년 6월 1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초반 치과의사와 두살 된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으로 불린 이 일은 드라마, 영화의 모든 소재를 압축시켜 놓은 듯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사건은 한국판 O.J. 심슨 사건, 의사 부부, 30대 초반, 미모의 치과의사, 치정에 얽힌 살해 의혹, 알리바이, 법의학, 8년간 법정투쟁, 파기환송심, 재상고심, 5심까지 공방, 스위스 법의학자 동원, 상처뿐인 승리,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다, 영구미제 사건 등 자극적인 모든 소재를 다 갖추고 있었다.
◇ 아파트 7층에서 연기가 피워올린 살인사건…반전에 반전
사건은 출근 시간이 지난 1995년 6월 12일 오전 8시 45분쯤 불광동의 한 아파트 7층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시작됐다.
이웃 주민이 '웬 연기냐'며 경비실에 연락, 7층에 도착한 경비원은 창문 틈으로 불이 난 것을 확인, 9시 10분쯤 119에 신고했다.
119는 신고접수 10분 만에 출동, 순식간에 화재 진압을 마친 뒤 피해 규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불은 안방 장롱, 장롱 속 옷가지, 커튼과 벽지 일부만을 태우는 등 미미한 피해를 냈다.
그러던 중 소방관들은 안방 옆 욕조 물속에서 모녀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 31살 치과의사, 그 품에 2살 딸…상의 벗겨지고 하의 일부도
119의 요청으로 출동한 은평경찰서 강력반은 욕조 속에 숨져 있는 A 씨(당시 31세)와 딸(2세)의 목을 조른 흔적을 확인했다.
또 A 씨 상의는 모두, 하의는 반쯤 벗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안방 장롱에서 타다 남은 종이를 찾아내 불이 안방에서 시작됐으며 누군가 살해한 뒤 은폐를 위해 불을 낸 것으로 판단했다.
즉각 경찰은 이웃 주민 등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에 들어가는 한편 △ 현관문이 잠겨 있는 점 △ 집안에 귀중품이 그대로 있는 점 △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 △ A 씨가 심하게 반항한 흔적이 없는 점 등을 미뤄 면식범에 의한 소행으로 단정 짓고 A 씨 남편 B 씨를 1차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 외과의사 남편…병원 개업식을 위해 오전 7시쯤 출근
1989년 A 씨와 결혼한 남편 B 씨(당시 33세)는 외과의사로 이날 새로 마련한 개업식 준비를 위해 오전 7시쯤 서둘러 집을 나선 것까지 확인됐다.
B 씨가 불광동에서 강서구 화곡동 자신의 병원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8시로 이동 거리로 볼 때 7시쯤 집을 나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A 씨 사망시점이 오전 7시 이전이냐 아니면 7시 이후냐에 따라 B 씨 혐의를 특정할 수 있다고 보고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 애매한 사망 시간…국과수, 오전 3시 30분~5시 30분 사이 사망 의견
경찰로부터 부검을 의뢰받은 국과수는 A 씨 우측 대퇴부에 양측성 시반(중력으로 인해 시신의 적혈구가 낮은 쪽으로 몰리는 현상)이 관찰됨에 따라 A 씨 모녀 사망시점을 6월 12일 새벽 3시 30분에서 5시 30분 사이로 판단했다.
양측성 시반은 사후 6시간~8시간 사이에 관찰되는 것으로 국과수가 부검에 들어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역산해 나온 시간이 새벽 3시 30분~5시 30분이다.
또 국과수는 시신이 딱딱하게 굳는 시간이 A 씨 손가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도 확인(손가락 관절 시강은 사후 6시간~12시간이 경과해야 진행됨), 사망 시간을 이같이 특정했다.
◇ 치과의사 '남편과 잠자리에서도 그가 생각난다'…아내, 남편 공중보건의 시절 불륜
경찰은 A 씨 일기장에서 "남편과 잠자리하면서도 그가 생각났다"는 대목을 찾아내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 아닌지도 살폈다.
경찰은 A 씨 치과 관계자로부터 '원장님이 1992년 병원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알게 된 C 씨와 깊은 관계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1992년은 B 씨가 공중 보건의로 강원도 모처에서 근무, A 씨와 떨어져 지내던 시절이었다.
C 씨는 찾아온 형사들에게 6월 12일 새벽과 아침 완벽한 알리바이를 대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 장모와 사이 안 좋았다, 가정불화 소문
경찰은 B 씨가 처가, 특히 장모와 사이가 안 좋았으며 이 일로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B 씨는 '5월 말, 장모님을 모시고 괌 여행까지 다녀왔다'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 아내의 불륜, 장모와의 불화 등 드러나고 조사한 모든 점을 볼 때 B 씨가 A 씨와 딸을 죽였다고 결론짓고 1995년 9월 2일 친족 살인, 현조건조물 방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 1심 "사망 시간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남편뿐" 사형 선고
1996년 2월 23일 1심인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는 "A 씨와 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현장에 있었던 이는 B 씨뿐이다"며 "B 씨가 공중보건의 시절 A 씨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죄 없는 딸까지 잔혹하게 살해한 점은 용서하기 힘들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이에 B 씨 측은 즉각 항소했다.
◇ 2심 "사망 시점은 추정에 불과,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무죄 선고
하지만 1996년 6월 26일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4부는 "사망 시점은 추정에 불과할 뿐으로 명백한 증거로 볼 수 없다"며 "따라서 B 씨를 진범으로 단정할 수 없기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180도 뒤집힌 판단을 내렸다.
2심에서 B 씨 측은 △ A 씨 우측 대퇴부 시반은 속옷을 입고 있었던 까닭에 압력으로 인해 피가 몰린 탓으로 일찍 형성됐다 △ 시강도 욕조 물 온도가 상온(외부온도)보다 높아 급격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 재판부를 설득했다.
◇ 대법원 "간접 증거도 의미 있다"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검찰의 상고로 진행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1998년 11월 13일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직접 증거가 없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부검 전문의 등을 의견을 볼 때 "간접 증거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를 무시한 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 재판의 하이라이트 파기환송심, 스위스의 세계적 법의학자 등장
모두들 B 씨가 파기환송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봤지만 B 씨 측 변호인들은 승부수를 던졌다.
세계적 법의학자인 스위스의 토마스 크롬폐허를 초빙, 증언대에 세웠다.
크롬폐허는 "현 과학수준으로 사망시간을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 경찰이 A 씨가 숨져 있는 욕조 물 온도를 재지 않은 점 △ A 씨 직장(直腸)내 온도를 측정하지 않아 시신 상태를 정확히 알기 힘든 점 등을 들어 "A 씨가 7시 이후 사망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여기에 변호인 측이 1800만 원을 들여 화재 모의실험을 진행 "만약 안방 장롱에서 불이 났다면 5분 내 아파트가 전소됐을 것인데 1시간 45분 후(남편이 7시쯤 출근한 뒤 연기 신고가 들어온 오전 8시 45분) 연기가 천천히 새어나가도록 할 수 없다"며 검찰에 맞섰다.
◇ 파기환송심 '무죄'-재상고심 역시 '무죄' 최종확정
결국 2001년 2월 18일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법 형사5부는 △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탄핵당해 증거 가치가 상당 부분 감소 △ 화재가 피고인 출근 전에 발생했다는 증거도 인정하기 어렵다 △ 제3자의 범행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다시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으나 대법원도 2003년 2월 16일 무죄를 확정했다.
무려 7년 8개월여를 끈 사건은 B 씨의 무죄로 끝났으나 재판에 지친 B 씨도, 국내 법의학 수준, 사건 현장을 대하는 경찰 등 승자가 없이 패자만 남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후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국과수 수사 및 부검역량이 한단계 도약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