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 야심" 확인한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장벽 넘을만해"
2024.06.24 11:36
수정 : 2024.06.24 11:3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뮤지컬 본고장 웨스트엔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높고 예산도 감당 못할 수준일 줄 알았다. 하지만 작품만 좋다면 한국 뮤지컬 제작사의 웨스트엔드 진출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마리 퀴리’ 강병원 대표)
지난 6월 8일(현지시간)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의 영어 버전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가운데, 이 작품을 제작한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가 이같이 말했다.
■ K-뮤지컬 해외 진출 “성공적 현지화 작업 중요”
‘마리 퀴리’ 웨스트엔드 초연은 대본·음악 외 무대, 조명, 의상 등을 재창작한 논 레플리카 프로덕션이다. 리드 프로듀서인 강병원 대표가 영국 현지 창작진과 함께 만들었다. 그는 “공연 제작의 본질은 같으나 인종과 체형을 고려한 캐스팅 등 시스템이나 정서는 달랐다”며 “웨스트엔드 진출이 넘지 못할 산은 아니었지만, 현지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마리 퀴리’는 300석 규모로 출발한 한국처럼 영국 현지에서도 비슷한 규모로 시작했다. 그는 “중소규모 작품의 경우 예산은 한국과 비슷했다. 오히려 한국보다 프리 프로덕션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연습 첫날부터 일부 세트와 소품이 들어오고, 연출자가 연출노트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보여줬다"고 비교했다.
‘마리 퀴리’는 내달 28일까지 공연된다. 한국 뮤지컬이 웨스트엔드에서 이렇게 영어로 장기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대표는 “공연에 앞서 현지 언론의 관심이 높았고, 관객 반응도 좋은 편이나 별 2개도 더러 있어 울기도 했다”며 “현지화를 거치면서 놓친 부분이 있더라”고 짚었다. “한국 창작진이 현지 연출과 음악감독, 배우들에게 작품의 주요 포인트를 설명했는데, 연습 과정에서 바뀐 부분이 있더라”며 “러닝타임이 40-50분 줄면서 대본에 대한 호불호가 나온 것도 아쉽다”고 부연했다.
뮤지컬 ‘유앤잇(YOU&IT)’은 오는 8월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한 달 장기공연에 들어간다. 이지뮤지컬컴퍼니의 이응규 대표도 이날 강연에 나서 “한국어 대사를 영어 대사로 바꾸는 게 이렇게 어려운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미국에서 뮤지컬 작곡을 전공한 그는 “처음에는 제가 직접 번역을 시도했으나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현지화를 잘해줄 작가, 음악감독, 연출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현지화는 건축으로 따지면 리모델링이다. 작가를 구할 때 원형을 보전할지 여부를 잘 따져야 한다. 창작자는 보통 창작 욕심이 있어 새롭게 만들려고 하는데,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선 계약 단계에서 원형 보존을 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브로드웨이, ‘위대한 개츠비’로 K-뮤지컬 야심 확인”
문화체육관광부는 K-뮤지컬의 공연예술 창작 단계부터 해외 진출까지 촘촘한 지원망을 구축해 뒷받침해왔다. ‘마리 퀴리’는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재외한국문화원 등이 긴밀하게 협업한 성과다. ‘유앤잇’은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역특화콘텐츠개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발굴돼 2019 DIMF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21년~2022년 K-뮤지컬국제투자마켓을 거쳐 예술경영지원센터 영미권 중기개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2년에 걸쳐 웨스트엔드 원더빌에서 5월 워크샵과 쇼케이스를 통해 작품이 개발됐다.
이응규 대표는 “2023 K-뮤지컬 국제마켓에서 한 영국인이 ‘유앤잇’을 보면서 울고 있던 것을 계기로 이야기를 나눴다”며 “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영국 뮤지컬 회사 CDM이 제너럴 매니저를 담당한 한-영 합작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진출 노하우로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꼽으며 “내 작품을 아무도 제작해주지 않아서 직접 제작자로 나섰는데, 이를 위해 예경에서 하는 경영 수업을 싹 다 들었고, 예경 사업에도 지원했다. 노하우는 예경
을 적극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브로드웨이 진출도 꿈꿨다. 브로드웨이에선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 공연 전문 저널리스트 자크 고든 콕스가 이날 한 ‘브로드웨이 트렌드’ 강연으로 미뤄볼 때 긍정적이다.
그는 “올해 토니상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한 ‘위대한 개츠비’가 한국공연산업의 위상을 많이 올려놨다”며 “한국의 야심을 엿보게 한 작품이다. 올 가을 공연을 앞둔 ‘어쩌면 해피엔딩’까지 성공하면 한국 작품·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대표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제작한 ‘위대한 개츠비’는 최근 토니상 수상 덕에 미국 뮤지컬계 비수기인 6월 말~7월 중순 기간 표도 잘 나가고 있으며 내년 봄까지 공연 기간도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콕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만 봐도 한국 작품은 재밌거나 기발하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사랑에 빠진 젊은 로봇의 이야기라니, '하이콘셉트' 화제작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또 할리우드 공연계의 세대교체를 언급하면서 “베이비붐 세대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창작자부터 관객까지 밀레니엄 X세대로 교체되는 과도기다. 이들은 문화 간 교류나 협력에 좀 더 열려있다"며 활발한 양국 교류가 한국 콘텐츠의 브로드웨이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