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 신상 공개해야"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 어머니 '울분'

      2024.07.15 05:35   수정 : 2024.07.15 1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저는 내 남편 내 자식이 다 죽었는데 가해자들은 잘 살고 있잖아요"

일명 ‘단역 배우 자매 사망사건’의 피해자 어머니 장 모 씨(72)는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가해자들의 신상을 폭로하겠다고 나선 한 유튜버와 관련한 심경에 이렇게 말했다. 장 씨는 "가해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성폭력'에 신고 못하게 협박까지…그날 무슨 일 있었나

2004년 7월 동생의 소개로 드라마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언니 A씨는 경남 하동의 드라마 촬영장에서 연예기획사 보조반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보조출연자를 관리하는 보조반장은 A씨에게 절대권력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 달 뒤 A씨를 성폭행하고 그 사실을 다른 반장들에게도 알렸다. 그렇게 A씨는 11월까지 촬영지 인근 모텔, 차 안에서 반장, 부장, 캐스팅 담당자 등에게 수시로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다. 성폭행 가해자는 4명, 성추행 가해자는 8명이었다.

하지만 A씨는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가해자들이 “주위에 알려 사회생활을 못하게 하겠다. 말하면 동생을 팔아 넘기고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의 병'을 얻은 A씨는 촬영만 다녀오면 이유 없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A 씨는 “OOO을 죽여야 한다”고 욕을 하면서 어머니와 동생을 때렸다. 결국 A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머니는 딸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극단적선택…세상에 남긴 억울함

어머니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 어머니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지 않고 A씨를 가해자 앞에 앉혀놓은 채 진술을 받았다. 가해자 1명은 A씨 앞에서 사건 당시 성행위 자세를 흉내내기도 했다. 이런 대질심문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1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또 조사과정에서 A씨는 가해자들의 성기 모양을 정확하게 그려오라는 요구까지 받았다고 한다.

대질심문을 받고 나온 날 A 씨는 울부짖으며 경찰서 앞 차도로 뛰어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딸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자, 결국 경찰 수사 1년 7개월 만에 고소를 취하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으면서 삶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던 A씨는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에 따르면 이 시간과 날짜는 가해자들에 대한 욕설이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던 A씨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분노의 표시였다.

그리고 6일 뒤 언니에게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소개했던 동생은 ‘엄마, 복수하고 20년 뒤 만나자’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뇌출혈로 두 달 뒤 딸들을 따라갔다.

가족 모두 잃고 다시 경찰 찾았지만…민사도 패소

순식간에 가족을 모두 잃은 어머니는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이미 취하한 고소를 번복할 수 없었다. 방법을 달리해 2014년 청구한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결국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여러 증인들의 증언과 당사자의 신분, 결과를 보면 성범죄를 당했을 여지가 있다”고 했지만,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문제였다.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청구해야 하는데 A씨가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나 소를 제기했다는 이유였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제 1인 시위 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가해자들의 실명이 적힌 피켓을 들었고, 가해자들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했다. 하지만 2017년 법원은 “피고인과 두 딸이 겪은 일련의 사건에서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와 이로 인해 가중됐을 극심한 괴로움을 보며 깊은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원한은 풀지 못했다.

이후 어머니는 지난 2018년부터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근황을 알리고, 직접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거나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러다 최근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에서 지난 6월 30일 단역배우 사망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당 채널은 최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폭로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가해자들 신상 다 알려지고, 가족들도 알아야" 분통



장 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가해자들 얼굴, 직장 등 신상이 모두 공개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 자식들은 다 죽었는데, 가해자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가해자들의 사과 여부에 대해서는 "사과도 없고 오히려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고소 관련 소송 등이 진행중에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장 씨는 "정신줄 놓고 살았다"면서 "다만 시간이 흐르니 지금은 그때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털어놨다. 장 씨는 "나중에라도 가해자들은 절대 사과를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의 신상과 관련해서는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마감하는지 꼭 볼 생각이다"라며 "신상이 모두 알려지면서 그들의 가족이 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 다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씨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는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보고 혼자 버티고 싸워서 힘드셨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응원해 주시고 정말 소중한 격려의 말씀주시고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여러분들이 저의 아들 딸 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너무 고맙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고 말했다.


한편 장 씨는 지난 2일 딸들이 겪은 피해 사실을 정리해, ''단역배우 두 자매 성폭력 사건' 나는 고발한다' 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판했다.

책 본문에 등장하는 재판부는 가해자들이 장 씨에게 건 명예훼손 재판에서 판결을 통해 이렇게 판시했다.


"이 법원은 공권력의 한 수임자로서 공권력의 총체적 실패를 자책하고 반성하는 한편, 피고인과 두 딸이 겪어야 했던 길고도 모진 고통에 대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사과와 간곡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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