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女 속옷 훔치려다 살인까지…밤엔 바바리맨 낮엔 회사원

      2024.09.04 05:00   수정 : 2024.09.04 14:25기사원문
바바리맨 이대영은 1995년 10월 18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 약수터에서 첫 살인을 했다. (KNN 갈무리) ⓒ 뉴스1


바바리맨 이대영의 차안에서 발견된 여성속옷, 흉기, 신분증 등. (MBN 갈무리) ⓒ 뉴스1


이대영의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던 23명의 남녀 신분증, 이들 중에는 2001년 9월 4일 살해된 피해자의 것도 들어 있어 두건의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 노릇을 했다. (MBN 갈무리) ⓒ 뉴스1


2009년 9월 27일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이대영 모습. (KNN 갈무리) ⓒ 뉴스1


바바리맨. ⓒ News1 DB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1년 9월 4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주택에서 A 씨(당시 30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일부는 불에 탄 상태였다. 경찰은 하의가 벗겨진 점, 피해자 몸에 상처가 난 점, 핸드백 등이 없어진 점을 보고 강도강간 사건으로 판단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용의자를 뒷받침할 물증이 전혀 없어 진척을 보지 못했으며 범인이 1995년 10월 18일 중곡동 아차산 약수터 50대 여성 살해범과 동일범이라는 건 생각조차 못 했다.

이 두 건의 미제 강력사건은 2009년 9월 26일 새벽 추석을 1주일 앞두고 특별 방범 순찰에 나섰던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 순찰차가 좀도둑으로 의심된 이대영(1973년 9월 29일생)을 불심검문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 순찰차 보고 뒷걸음질. 불심검문 뒤 지구대 연행

여성 속옷에 집착을 보인 이대영은 혹시 마당에 속옷을 걸어둔 집이 없을까 하면서 그날 새벽 광진구 화양동 주택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경찰 순찰차가 나타났다.

이대영은 "에이 하필 이때"라고 하면서 뒷걸음질 치며 오던 길로 뒤돌아섰다. 이를 본 경찰관은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불심검문을 시도했다.

이대영은 "난 000"이라며 신분증을 내밀었다. 하지만 신분증 얼굴과 달라 경찰관은 주민등록 번호를 물었지만 이대영은 "7XX…"어쩌고 하면서 주민등록증 번호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에 경찰관은 일단 지구대로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다.

◇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는 1년 전 도난당한 것…자동차에서 여성 속옷 우르르

지구대 경찰관은 이대영이 갖고 있는 휴대전화를 보고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지만 그는 "까먹었다"는 등 횡설수설했다.

이에 휴대전화 기본 정보를 통해 번호를 알아낸 경찰은 그 번호를 전화를 걸었더니 '1년 전 도난된 휴대전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그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자동차 열쇠를 보고 "차를 어디에 세워뒀냐"고 추궁, 이대영을 앞세워 차 있는 곳까지 갔다.

그의 자동차에는 여성 속옷 20여 점과 흉기 3점,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나와 화양 지구대는 이대영을 '절도혐의'로 광진경찰서로 넘겼다.

◇ 하드디스크엔 8년전 살해된 여성 신분증…판도라 상자 열려

광진경찰서 형사들은 처음엔 이대영을 여성 속옷 절도범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이력 조회결과 사람들 앞에서 성기를 노출한 전력(2006년 음란공연죄)과 여성 속옷 절도(2002년), 강도(1998년) 등 전과 3범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형사는 "왜 새벽에 돌아다녔나, 뭘 훔쳤냐'를 추궁하면서 그가 갖고 있던 하드디스크를 열어 봤다.

그 안에는 포르노와 함께 남녀 23명의 신분증 사본이 들어 있었다.

이에 남녀 23명의 신상 파악에 나선 형사는 그중 한 명이 2001년 9월 4일 피살된 A 씨임을 확인, 단순절도가 아닌 강력사건으로 전환했다.

◇ 어르고 달래서 자백 받아내…2001년뿐 아니라 1995년 살인사건도

담당 형사는 이대영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 어르고 달래면서 자백을 유도했다.

그 결과 이대영은 "평소 A 씨를 좋아해 눈여겨보고 있었다"며 범행을 실토했다.

이대영은 2001년 9월 4일 새벽 A 씨 집에 몰래 들어가 속옷을 먼저 훔친 뒤 A 씨 가슴을 만지자 소리를 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했다.

이어 강도강간으로 위장하기 위해 농을 열어 옷가지, 이불 등을 빼내고 A 씨 몸에 상처를 입힌 뒤 핸드백과 현금 2만 원을 챙겨 나갔다고 했다.

뒤이어 이대영은 1995년 10월 18일 아차산 약수터 사건도 "내가 한 짓'이라고 털어놓았다.

◇ 약수터에서 세수하고 있는데 "먹는 물로 왜 얼굴을 씻느냐" 핀잔, 화가 나 그만

이대영은 그날 새벽 운동 삼아 아차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약수터에서 얼굴을 씻고 있었다.

이를 본 B 씨(당시 58세)가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먹는 물인데 세수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야단쳤다.

이 말에 욱한 이대영은 옆에 있던 돌을 집어 들어 B 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산책로 주변으로 끌고 가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모두 빼낸 뒤 유기했다.

경찰은 강도강간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펼쳤지만 당시만 해도 약수터 주변에 CCTV 등의 방범 시설이 변변치 않아 범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 사실혼 관계 동거녀 "그럴 사람 아니다"…낮엔 회사원 밤엔 바바리맨, 철저한 이중생활

이대영은 1995년 2월 군에서 제대한 뒤 인쇄소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인 것처럼 행세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바바리맨으로 변신했고 여성 속옷에 탐닉했다.

회사 동료, 이웃들도 그를 '얌전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2004년부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동거녀는 "그 사람이 흉악범, 바바리맨인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했다.

◇ 불우한 가정환경, 어린 시절 남성에게 성폭행…성적 취향 정상에서 벗어나

이대영은 5명의 이복형제를 둔 재혼가정의 막내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가운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이대영은 삐뚤어진 성적 취향을 지니게 됐다.

소아성애자 면모까지 나타난 이대영은 포르노 심취, 바바리맨 생활, 여성 속옷 착용, 여성 속옷 탐닉 등으로 하루하루 해소해 나갔다.

프로파일러가 투입돼 조사한 결과 이대영은 '사이코패스'판정을 받았다.

◇ 법원 "죄질 나쁘지만 자백한 점, 어린 시절 성폭행 피해 감안…" 징역 22년 6월형

1심인 서울동부지법 제11형사부(정영훈 부장판사)는 2009년 12월 29일 이대영에게 징역 22년 6월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도와 절도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다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동기와 수법, 죄질이 극히 나쁘다"고 지적했다.

다만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점, 14년 8년 전 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보이는 점,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초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한 경험 등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나름 선처한 형량임을 알렸다.


검찰이 형이 낮다며 항소했으나 2심 역시 1심 형량을 유지, 이대영은 15년 가까이 옥살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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