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호수 불리던 '달방 생활'…여관 투숙객 3명 목숨 앗아간 방화

      2024.09.21 16:27   수정 : 2024.09.21 17:41기사원문
21일 새벽 방화에 의한 화재로 장기 투숙객 3명이 숨진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여관 모습. 2024.09.21./뉴스1 박건영 기자 ⓒ News1 박건영 기자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한 여관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2024.09.21./뉴스1 박건영 기자


(청주=뉴스1) 박건영 기자 = "'달방' 얻어 살던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참 안타깝네요."

2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여관 앞에 모여든 동네 주민들은 한참 동안 화재 현장을 바라보다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이 여관에선 이날 방화에 의한 화재로 투숙객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이들은 모두 월 28만~30만 원을 내고 '달방'(한 달 치 숙박비를 내고 투숙하는 방)을 얻어 살던 장기 투숙객이다. 주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일당을 받아 생계를 이어왔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인근 슈퍼마켓에서 1만~2만 원어치 담배나 식료품을 살 때도 외상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난 여관 맞은편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A 씨는 "그 여관에 사는 투숙객들이 우리 슈퍼에 자주 왔는데, 자그마한 것도 거의 외상을 달아놓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며 "얼마 전에도 얼굴을 봤는데, 하루아침에 이런 사고가 발생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여관촌 특성상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숨진 이들의 이름이나 나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30x호' '20x호' 등 숨진 투숙객들이 생전에 묵었던 호실을 이름처럼 부르며 종종 사는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근처 다른 여관 주인 B 씨는 "'20x호'가 조용하고 항상 먹고사는 걱정을 하며 묵묵하게 일했는데 정말 안타깝다"며 "3~4평 안팎의 좁은 여관방 안에서 얼마나 쓸쓸하게 갔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이들 여관 투숙객의 목숨을 앗아간 방화 용의자는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같은 여관 3층 끝방에 머물던 김모 씨(48)였다.

앞서 여관 주인에게 '이달 20일까지 월세를 내지 못하면 퇴거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써줬던 김 씨는 끝내 돈을 구하지 못하자 건물에 불을 질렀다.

그가 여관 1층 출입문 안쪽에 쌓아놓은 단열재에 붙인 불은 순식간에 여관 2~3층까지 번졌다.


동네 주민들은 김 씨가 평소 일당을 받는 족족 술 먹는 데 썼고, 술을 먹으면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 왔다고 전했다.

이웃 주민 C 씨는 "김 씨에게 '월세를 먼저 내라'고 말해도 술을 사 먹는 데 전부 써버렸다"며 "며칠 전부터 '쫓겨나면 갈 곳 없다'고 하소연하더니 이런 짓을 벌일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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