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론적 해리스 패인 분석 유감

      2024.11.18 18:36   수정 : 2024.11.18 18:40기사원문
선거에서 패한 후보는 각종 비판에 직면한다. 특히 패배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후보의 여러 면을 결과론적으로 지적하며 패인이라고 규정한다. 이때 승패에 절대 가치를 두는 전략적 관점만 난무하며 후보들이 선거 과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게 당위적으로 바람직한 건지는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생명에 연연하는 후보나 참모야 당위적 측면에 별 관심이 없겠지만 언론인, 학자, 일반 시민마저 그래선 곤란하다. 당위적 논의야말로 중장기적으로 국가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미국 대선의 패배자 카멀라 해리스가 각종 비판을 받고 있다. 왜 졌느냐는 패인에 관한 결과론이 주를 이룬다. 해리스가 인종·성별 등 정체성 이슈를 부각하지 않아서 졌다, 반대로 정체성 이슈를 확실히 손절하지 못해서 졌다, 법과 질서를 너무 강조해서 졌다, 반대로 법과 질서를 더 내세우지 못해서 졌다, 트럼프의 반민주적 위험성을 조명하지 못해서 졌다, 반대로 트럼프를 너무 민주주의 관점에서만 재단해서 졌다, 인플레에 대한 방어 논리를 세우지 못해서 졌다, 애초 부통령이 되기도 힘들 만큼 경력이 미미해서 졌다, 대중 호소력을 띠지 못해서 졌다, 심지어 키가 너무 작아서 졌다 등등. 현실적 패인 분석에서 나온 비판들이다. 그런데 해리스가 당위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는지에 관한 논의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해리스와 무관하게 상황상 민주당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판이었다는 주장들도 있으나, 이 역시 현실 분석에 입각한 거고 당위적 평가에서 나온 건 아니다.

선거 승인·패인 분석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연장선에서 혹은 상관없이라도 당위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해리스가 패했으나 선거 과정에서 칭찬받을 만했는지 아닌지를 중장기 관점에서 당위적 가치들에 연결해 논할 필요가 있다. 여러 당위적 가치가 있으나 요즘 미국의 심각한 문제가 이념적·정서적 양극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용, 중간적 화합의 가치가 특히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후보로서 해리스가 그 가치에 도움이 될 모습을 보였는지, 그래서 양극화의 완화에 공헌할 수 있었는지를 논해야 한다. 이 논의는 미국뿐 아니라 양극화로 곪은 한국, 유럽 등 여타 사회에도 적실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트럼프가 상대편을 악마화하고 자기편만 보는 전략적 극단주의를 노골적으로 취하며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엄연한 사실을 봐도 과연 해리스는 어땠는지 평가하는 것의 의미가 크다.

해리스가 트럼프와 달리 중간 지대를 바라보며 중도층까지 껴안으려 했음은 당위적으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해리스는 진보적 유색인종 여성이나 그쪽 진영만 좋아하는 낙태 합법화, 총기 규제 등에서는 입장을 누그러뜨렸고 중도층이 좋아할 만한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사회적 화합을 외쳤다. 물론 이런 온건 중도 전략이 선거 승리를 가져오진 못했다. 출구조사상 성별·학력·이념의 양극화는 여전히 확연하다. 그러나 해리스의 중도 전략이 없었다면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그 점에서 해리스는 당위적으로 칭찬받을 만했고, 승패만 따지는 결과론적 비판론에 받은 상처를 어느 정도 위로받을 수 있다. 이런 당위적 차원의 긍정 평가가 공허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중도로의 저변 확대를 시도하고 결과를 깨끗이 승복한 민주당이 2년 후 중간선거나 4년 후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트럼프 정책이 각종 난관에 부딪혀 표류하고 트럼프 이후를 놓고 공화당이 내분과 혼란에 빠질 시점에 중대하게 다가올 수 있다.


미국 경우는 비교학적 교훈을 준다. 선거 승인·패인의 결과론적 분석에 그치지 말고, 선거 과정상 후보들의 입장·행동이 당위적으로 어땠는지도 논해야 한다.
그래야 중장기적으로 공동선이 도외시되지 않을 수 있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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