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 갈망하고 있는 서울… 노들섬이 충족시켜 줄 것"

      2024.11.28 17:23   수정 : 2024.11.28 17:23기사원문

서울시는 지난 5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에서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SOUNDSCAPE(소리풍경)'를 선정했다. 토마스 헤더윅은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건축가로 다양한 재료와 공예 기법을 활용해 건축은 물론, 공공 디자인, 제품 디자인, 조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런던올림픽 성화대 △런던 템스강 '가든 브리지' △뉴욕 허드슨야드의 '베슬' △실리콘밸리 구글 사옥 △뉴욕 리틀아일랜드 등이 있다.

노들섬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과 처음 연을 맺은 헤더윅은 내년에 열릴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도 총감독을 맡게 됐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토마스 헤더윅과 서면인터뷰를 나눴다.


ㅡ지난 5월 서울시의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에서 당선됐다. 국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인데, 무엇에 이끌려 참여하게 됐나.

▲도시 속 공공 공간으로서 노들섬의 잠재력에 매료됐다. 공감과 소통의 장소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교감하는 노들섬만의 매력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만으로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경과 인프라, 원예, 수생 생태가 모두 혼합된 곳이지만 건축물이 아니라는 점에도 끌렸다. 여러 요소들이 공존하면서도 동시에 개별성을 띠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섬'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도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노들섬은 무인도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가기 힘들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고속간선도로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한강대교를 건너면서도 노들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하다. 노들섬을 방문한 사람들은 물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가거나 직접 만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간선도로를, 혹은 대교 위를 지나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들게 하는 그런 장소에 대한 열망을 디자인으로 실현했다. 우리는 시민들이 노들섬에서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한강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ㅡ'소리풍경'은 노들섬의 어떤 잠재력을 끌어냈나.

▲'소리풍경'에는 여러 층(layer)이 존재한다. 우선, '물'을 통해 수생 식물들을 복원하고, 섬 곳곳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해 시민들이 강 위에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또 전세계가 이미 인정한 한국의 '음악'은 '뛰는 심장(a beating heart)'이 된다. 노들섬에서는 K팝 뿐 아니라, 스트리트 댄싱, 클래식 공연, 트로트 등 다양한 음악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들을 조성한다. 그래서 우리 프로젝트가 '소리풍경'이 됐다.

ㅡ2~3년 후 '소리풍경'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노들섬에서 서울 시민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전 세계적으로 도시는 서로 비슷해 지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 비슷한 교통 시스템 및 인프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태어날 노들섬은 평범하지 않은 곳 '서울'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됐으면 한다. 노들섬을 찾는 시민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경이로움을 느끼며, 진정으로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를 희망한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강을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한강이 사람들의 삶으로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한강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단절된 디지털 시대에 노들섬만큼은 직접 체험하고, 만지고 느끼고, 소통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노들섬이 한강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

ㅡ노들섬이 '소리풍경'으로 완성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텐데, 어떤 마음 가짐인지.

▲비록 우리에게 넉넉한 예산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민들이 진심으로 소중하게 느끼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울 시민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디자인하게 된 이 귀중한 프로젝트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열정을 다 할 것이다.


ㅡ그렇다면 보통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프로젝트든 내 나름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먼저 갖는다. 이 프로젝트만의 중요한 본질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미국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원래 맨해튼 수변공간 부지에 지을 공연장을 설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물 위에 떠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본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오랜 시간 방치된 옛 부두를 재생해 기억에 남을 새로운 무언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런던올림픽 성화대' 프로젝트 역시 스타디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하고,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설계지침이 있었다. 그러나 본질로 돌아가 본 결과, 수억명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탄성한 놀라운 결과물을 얻었다.(런던올림픽 성화대는 참가국수를 의미하는 205개의 구리로 만든 꽃잎이 스타티움 바닥에 펼쳐져 있다가 제각각 불을 밝힌 뒤 일제히 수직으로 세워져 하나의 큰 성화가 되는 형태였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생각과 질문의 시간이, 펜과 스케치북으로 그린 멋진 스케치나 메모보다 훨씬 더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ㅡ공공 프로젝트와 민간 프로젝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했는데, 각각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우리는 민간에서 발주했더라도 공공 영역에 있다면 공공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많은 민간 프로젝트는 도시 프로젝트이며, 결국은 공공 생활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건물은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물은 사람에게 관대하고, 사회적 구조를 육성 및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건물은 반짝거리는 재료를 이용해 직선의 딱딱하고 비슷비슷하게, 친근하지 않은 익명의 형태로 만든다. 이런 건물들은 따뜻하고 관대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건축물이 사회적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려 한다.

ㅡ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이지만 건축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 서울의 건축을 어떻게 평가하나. 또 개선책을 제안한다면.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전통한옥에 머물렀는데, 그 때 서울에 반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옥이 점차 줄어들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이 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도시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대화와 논의들이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에는 매우 훌륭한 자연 환경이 있고, 중앙엔 거대한 강을 품고 있다. 크고 작은 다양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며 생성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문화는 이제 세계적으로 하나의 국제적 현상이다. 세계를 무대로 뻗어 나가고 있는 동시에 한국이라는 국가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건축적으로 봤을 때 흔히 세계화되면서 모방이 많아지고 개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내가 보고 느낀 서울은 특별함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의미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느낀다. 서울의 예술계 또한 놀랍다. 최근 영국 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예술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으로 두 사람 모두 즉시 '서울'을 꼽았다. 서울과의 다양한 협업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나와 내 팀이 한국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느끼고 있다.

ㅡ'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임명됐다. 특별한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해도 될까.

▲총감독으로 임명됐을 때 정말 기뻤다. 디자인은 도시를 보다 인간중심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비엔날레는 건축종사자들끼리 폐쇄적으로 소통하는 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년 비엔날레는 서울시민들이 서울의 건축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모두는 지식 없이 건물을 느끼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대중에게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들 때마다 우리는 의뢰인의 욕구뿐 아니라 행인들과 건물을 둘러싼 주변도로, 거리도 배려하고 수용해야 한다. 요즘은 안타깝게도, 새로운 건물 대부분이 주변에 기쁨을 주지 못한다.
대단하고 화려한 박물관과 오페라하우스일 필요도 없다. 건축업계는 귀를 열고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설교는 덜해야 한다.
그래서 내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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