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40도 홉스골 호수서 오열한 현빈, "안중근 의사의 두려움 마주해"

      2024.12.23 10:55   수정 : 2024.12.23 10:5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안중근(1879~1919) 의사가 영웅 아닌 실패에 좌절하고 두려움에 떠는 한 인간으로 되살아났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을 통해서다.

'하얼빈'은 몽골과 라트비아, 중국 등 3개국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한 300억원 대작이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우민호 감독 "안중근 자서전 읽고 큰 울림"

'하얼빈'은 안중근(현빈) 대한의군 참모총장이 만국공법에 따라 일본 포로를 풀어줬다가 역습을 당해 많은 동료를 잃은 신아산 전투에서 1909년 하얼빈 의거까지 1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나라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처단하려 하얼빈으로 향하는 독립군과 이를 쫓는 일본군 사이 추적과 의심을 그린다. '기생충' '설국열차'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매 장면 감탄을 자아내는 영상을 펼쳐 보이고 '헤어질 결심' 조영욱 음악감독이 풍성한 선율을 보탰다.

우민호 감독은 지난 19일 취재진과 만나 "이 영화를 상업 오락 영화로 풀고 싶지 않았다"며 "묵직하게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의 여정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에 다 빼앗겨 땅 한 평도 없던 시기 광활한 자연 앞에 놓인 그들은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고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에게서 숭고함이 느껴지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당시 충무로에서 안중근 소재 '영웅'(2022)이 작업 중인데도 이 작품을 한 이유는 "안중근 자서전을 읽고 큰 울림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하얼빈 거사 때 안중근의 나이가 서른에 불과했고, 하얼빈 거사 전까진 패장(敗將)이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며 "우리도 많은 역경을 겪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나.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이 영화에서 자연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광활한 몽골 사막에서는 독립군들의 외로움과 결연한 투지가, 차가운 겨울 라트비아에서는 독립군과 일본군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또 군중 샷이 많고 마치 명화의 한 장면처럼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강렬한 게 특징이다.

우 감독은 "시네마틱하게, 고전적 스타일로 찍었다"며 "OTT 시대, 영화만의 차별성을 꾀함과 동시에 독립군의 얼굴과 정신을 숭고하게 담기에 최적의 스타일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쐈지만 동지들의 희생이 있어서 가능했다. 군상화처럼 보이길 바랐다. '영웅' 안중근이나 '영웅' 독립군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관객들이 느끼길 바랐다"고 부연했다.

대본이 잘 풀리진 않을 땐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으면서 가닥을 잡았다.

우 감독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꼈다"며 "짓밟아도 다시 살아나고, 저항하고 싸웠다"고 돌이켰다.

이러한 민족의 생명력은 극중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그는 "조선이란 나라는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라며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현빈 "안중근 상징성 덕에 압박감 컸다"

출연 제의를 몇 차례 거절했던 현빈은 이날 "안중근의 존재감과 상징성 덕에 압박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중근 장군의 처형 신을 찍고 거의 오열했다"고 말했다.

체력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든 영화였지만 영하 40도 강추위에 얼어붙은 홉스골 호수 위를 걷고 또 설산에서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하는 등 몸 고생도 컸다.

현빈은 "영화에 나온 모든 자연현상은 다 실제"라며 "CG는 없다. 빛이 나고 바람이 불기까지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10분 찍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홉스골 호수 신을 떠올리며 "1m 깊이로 얼어있었는데도 희한한 소리가 나 무서웠다"며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빙판과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뿐이었다. 끝도 안 보이는 곳을 향해 한발씩 내딛은 당시 독립군들의 고독이 어렴풋이 짐작됐다"고 말했다.

신아산 전투신은 50년 만에 광주에 내린 폭설 덕에 설산에서 찍었다. 그는 "눈밭은 결국 진흙밭이 됐다"며 당시의 치열함을 전했다.

교수형 장면을 찍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교수대가 천장 높이만큼 높았다. 철판대로 올라가는데, 그 소리가 공포심을 자아냈다"며 "천을 뒤집어쓰기 전부터 만감이 교차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남은 동지들에게 미안함도 들었다"고 전했다.

우 감독도 "하얼빈 거사 후 폭압이 더 거세졌다"며 "그래서 거사가 성공했지만, 통쾌하게 끝낼수 없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실패한 장군의 뒷모습에서 시작해 마지막 스크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안중근의 얼굴로 끝난다. 안중근의 내레이션은 현재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큰 울림을 전한다.

우감독은 절묘한 개봉 시기와 관련해 "10·26을 소재로 한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하자 바로 코로나가 왔는데, 이번엔 계엄이 터졌다"고 돌이켰다.

그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다시 반복돼 참담했다"며 "비극의 역사일수록 되짚어봐야 하는구나. 이는 시대극이 계속 나와야하는 이유"라며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또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지만,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영화가 관객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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