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마다 이사해야 하는 법관들의 고된 운명
파이낸셜뉴스
2025.02.08 09:00
수정 : 2025.02.08 09:00기사원문
![2-3년마다 이사해야 하는 법관들의 고된 운명 [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법원 이야기']](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4/08/23/202408230906476849_l.jpg)
[파이낸셜뉴스] 매년 2월은 법원 인사 시즌이다. 그래서 2월의 법원은 매우 어수선하다. 인사를 앞두고 법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임지를 예측해 보기도 하고 동료 법관들의 사직 소식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법관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 한 법원에서 2-3년 정도 근무하면 다른 법원으로 옮겨야 한다. 요즘에는 법관 인사가 인사발령일 기준 4주 정도 전에 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인사발령일 2주 전에야 자신의 다음 임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2주 만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이 어느 지역으로 갈지 미리 알 수 없기에 인사 발표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새로운 임지에서 거처를 구하게 된다. 그래서 거주지가 확정될 때까지 1달 이상을 모텔 등 임시거처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판사는 대담하게도 미리 자신이 가고 싶은 임지 근처에 집을 구해 놓는 경우도 있다. 미리 집을 구해 놓으면 혹시 법원행정처에서 사정을 봐줄까 해서 그렇게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임대차계약 계약금을 몰취 당하는 등 곤욕을 치룬 법관들도 본 적이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근무하고 싶어 하는 법관이 지방권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는 법관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법관으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원치 않은 시점에 지방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보통 법관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기 전에 4년 정도 지방 근무를 하게 되고, 부장판사가 된 이후에도 정년에 이를 때까지 2년 내지 3년의 지방 근무를 두 번 정도 더 하게 된다. 특히 지방법원 부장판사 정도 되는 연배가 되었을 때는 자녀들이 주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방권으로 전보 시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경우 전보 대상 법관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만 이사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법관들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퇴근 후에 자유롭게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서 지방 근무가 생각보다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법관들은 한창 자녀들에게 신경 써 주어야 할 시기에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외롭게 지내야만 하는 지방 근무를 매우 힘들어했고, 특히 여성 법관들의 경우 더욱 그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법관 인사는 다른 어떤 회사나 공공기관보다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법원은 매일 어떤 결론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인지 판단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형평에 어긋나는 인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법관마다 개별 인사 마일리지가 있어서 많은 법관들이 선호하는 임지에 자주 배치되었던 법관들은 향후 비선호 임지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즉 비선호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법관들은 마일리지가 많이 쌓여 있고, 선호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법관들은 마일리지가 적게 쌓여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마일리지를 법원행정처 인사실에서 관리하고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얘기로 보인다.
필자의 경우 17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했었는데 그 중 대전에서 3년, 그리고 성남지원에서 2년을 뺀 나머지 12년은 모두 수원에서 근무하였다. 2010년 수원지방법원으로 전보되기 전에는 수원에 단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었기에 내가 수원에 그렇게 오랫동안 근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지 당시 거주지(분당)에서 제일 가까운 법원을 찾다가 수원지방법원으로 가게 되었고, 서울 쪽으로 전보될 시기에는 출·퇴근의 편의를 이유로(아침 시간에 분당에서 서울 쪽으로 가는 교통은 좋지 않지만, 분당에서 수원 쪽으로 가는 교통은 원활했다) 수원지방법원에서 계속 근무했다. 그러다가 2019년에 수원가정법원이 개원하면서 가사소년전문법관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고, 운 좋게 선발됨으로써 그렇게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지방 근무도 최선호 지역인 대전에서 마쳤고, 같은 법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혜택도 보았기 때문에, 만약 ‘인사 마일리지’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인사 마일리지는 매우 적었을 것이다. 내가 계속 법관으로 근무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2024년 2월 수원가정법원에서 만 5년 간의 가사소년전문법관을 마치고 수도권에서 아주 원거리에 있는 비선호 법원으로 전보되었을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장기근무법관 제도의 도입, 스마트워크의 확대 등을 통해 법관들의 잦은 인사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폐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기근무법관에 선발되면 다른 법원으로 전보될 걱정 없이 같은 법원에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기에 가족들과 떨어져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 법관들도 미국처럼 같은 법원에 평생 근무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장기근무법관 제도를 점차 확대하면서 대부분의 법관을 장기근무 법관으로 운용하고, 신규 법관 임용은 공석이 생긴 법원만 시행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해마다 인사 시즌이면 성실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여러 법관들이 사직하곤 하는데 물론 다들 각자의 개인적인 사정도 있겠지만 원치 않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지방으로 내려가서 근무해야 하는 경향 교류 근무 방식도 사직의 한몫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의 경우에도 이것이 주된 사직 이유였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필자에게 법관으로 근무했을 때와 변호사로 일할 때의 장단점을 자주 묻곤 하는데 물론 각 직업의 장단점은 모두 존재하지만서도 변호사로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근무지의 안정성이다. 법원에서 근무하는 동안은 늘 인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어느 한 법원에 적응할 만하면 또 다른 법원으로 전보되어야 하는 처지가 늘 신경쓰였는데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안하다. 사법부가 많은 경험과 연륜을 가진 노련한 법관을 잃는 것은 법원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큰 손실이므로, 법관들에 대한 인사가 최소화되고 가능하면 법관들이 평생 한 법원에 근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기를 희망해 본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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