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가는 길에 ‘빨간산’뿐"… "군산, 정돈된 가옥들 볼만"
파이낸셜뉴스
2025.02.24 18:28
수정 : 2025.02.24 21:00기사원문
춘원 이광수의 국토기행
충남 등 5道 기행 ‘오도답파여행’
각 지역 돌며 지리 정보 기록
발전 위한 개인 견해도 담아
일제강점기 흔적 곳곳에 담겨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공주 가는 길에 ‘빨간산’뿐"… "군산, 정돈된 가옥들 볼만"](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4/202502241839111984_l.jpg)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공주 가는 길에 ‘빨간산’뿐"… "군산, 정돈된 가옥들 볼만"](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4/202502241839127447_s.jpg)
춘원의 대표적인 기행록으로는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1922),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1913~1919), '남유잡감'(南遊雜感·1913~1931) 등이 있다. 금강산유기는 서울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과 금강산을 기록한 것이다. 오도답파여행은 한국의 충남·전북·전남·경남·경북 5도를 둘러본 여행기이고, 남유잡감은 일본·중국·연해주 등 해외여행기다.
오도답파여행은 1917년 6월 '매일신보'에 연재한 글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다음 해에 다시 정리해 육당 최남선이 운영하는 '청춘' 잡지에 매호 실었다. 여기서 춘원은 각 지역의 모습을 간단히 설명하고, 지역의 발전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미래의 기대하는 상상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기행문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가능하면 춘원 특유의 말투를 그대로 살리고자 한다. 오도답파여행의 일부를 살펴보자.
조선의 제일의 평야요, 제일의 미(米) 산지인 전북평야에 들어섰다. 일망무제다. 평야 중에는 조산(造山) 같은 조그마한 산들이 있고, 산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밑에 촌락이 있다. 마치 바위에 의지하여 굴이 붙어 있는 것 같다. 들에 나가 먹고 산에 들어와 자는 것이 이 지방의 특색이다. 그러나 어떤 촌락은 그만한 산도 얻지 못하여 광야에 길 잃은 자 모양으로 벌판에 있는 자도 있다. 퍽 산이 귀하다. 이 평야는 고래로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겸수(兼修)하므로 농민의 생활이 극히 불안정하였다. 만일 수리(水利)가 정리되면 농민의 생활이 안정되고 넉넉히 3할 이상의 증수(增收)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군산에 도착하였다. 군산은 전북 유일의 개항장이요, 조선 제일의 곡물 수출항이다. 가구의 정연함과 가옥의 정제함이 꽤 미관이다. 이리역(裡里驛)에 하차하여 경철로 전주로 항하였다. 이름은 경철이라 하지만 차창도 훌륭하고 속도도 어지간히 빠르다. 전주의 수려한 봉만(峰巒)이 가까워진다. 산은 참으로 수려하다. 전주의 특색은 산이라 하였다. 대장촌, 삼례 등지의 농장이며 송림이 울창한 건북산릉의 승경은 귀로에 찾기로 했다. 전주는 백제시절에 완산 혹은 비사벌이라 하였다 하며, 견훤의 후백제의 왕도라 한다. 전주 금융기관으로는 금융조합이 있으나 중농 이상 이용이 가능하여 뒤에 소농도 가능한 전주농사조합을 시험적으로 설립하였다. 전주에 제지공업을 기계공업적으로 가능하도록 시험 중이라 한다. 전주는 죽기, 목기, 지류, 선자(扇子) 등은 전부터 유명하였다. 당국의 장려로 더욱 발전하였다. 이를 위해 전주공립간이공업학교 생도들의 죽기와 목기, 장수의 석기, 운봉의 목기는 세계 어느 시장에 내어도 부끄럽지 아니한 것이다.
이상의 춘원답사기는 '오도답파'의 충남과 전북의 일부를 담은 것이다. 위의 글은 1963년에 나온 이광수전집 18권에서 인용했다. 그의 전집은 방대한 분량의 작품집으로 소설, 시, 수필, 기행문, 서간문 등 다양한 글들의 모음이다. 편집위원으로는 주요한, 박종화, 백철, 정비석, 박계주 등 당대 한국 최고의 문학인들이 참여했다.
이 전집에서 춘원은 우리 한글과 어려운 한자, 당시의 일본식 한자, 일본어, 영어 등을 혼용하여 쓰고 있다. 춘원의 대단한 문학 수행의 결과일 것이다. 후대에 춘원의 의식과 사상에 대한 비판론도 많이 나왔지만, 당시 근현대 교육이 매우 부족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많은 지리정보와 함께 개인적 삶의 개선과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춘원의 친일론으로 전국 50여곳에 이런저런 문학관이 있지만 이광수문학관은 없다. 다만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의 11인의 문학인에 춘원의 이름이 들어 있다. 춘원이 북한 평북 정주 태생이고, 자강도 강계에서 별세한 영향도 있는 것일까. 아무튼 춘원의 기행문은 문학적인 표현과 함께 당대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미래 의견을 함께 보여준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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