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피해자 향한 냉소 더 큰 참사 막을 기회 없애는 것"
파이낸셜뉴스
2025.03.25 19:13
수정 : 2025.03.25 19:13기사원문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재난 극복·논의하는 '허니문' 기간
길수록 대형 참사 예방에 도움돼
피해자들에 지속적인 관심 필요
국가트라우마센터 환경 너무 열악
지속가능 시스템 갖추도록 최선
!["재난 피해자 향한 냉소 더 큰 참사 막을 기회 없애는 것" [fn 이사람]](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3/25/202503251913413701_l.jpg)
'허니문 피리어드(Honeymoon Period).' 재난 발생 초기이자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재난을 극복해 나가려는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대개 허니문 피리어드는 금방 끝난다고들 한다. 재난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회피의 속성을 가진 것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재난의 주기와 강도를 따져볼 때 앞으로도 재난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낙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럴 때마다 허니문 피리어드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허니문 피리어드의 중요성을 강조한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사진)을 지난 20일 서울 광진구 국가트라우마센터 국립정신건강센터장실에서 만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심 센터장은 국내 최초로 재난심리전담반을 조직했다. 지난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로 확대·개편된 후 현재까지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총괄하고 있다. 통합심리지원단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260만건 넘는 상담을 제공했다. 지난 1월에는 국민의 재난 트라우마 극복에 헌신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공무원상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전남 무안에서 유가족의 트라우마 치료를 도왔다.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지 80일이 넘었다. 심 센터장은 "참사의 허니문 피리어드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2차 가해 방지와 선례를 꼽았다. 그는 "재난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가 있어야 재난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부연했다.
심 센터장은 허니문 피리어드를 늘린 대표 선례로 '9·11 테러'를 꼽았다. 지난 2001년 이슬람 테러조직이 납치한 민간 항공기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덮쳤고 총 298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재난 앞에서 국가가 무한한 책임을 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령 테러 생존자는 물론이고 소방관 등 현장 대응인력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 대한 지원을 기한 없이 이어가고 있다. 공동 추모공간으로 만든 '9·11 메모리얼 파크'에는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다. 그 덕분에 피해자나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나 냉소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재난 대응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트라우마센터를 향한 지원은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별도의 과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정원은 49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약 70%는 공무원이 아니라 공무직이다. 공무원과 달리 공무직은 평균 재직 기간이 2년에 그치고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전문성을 축적하고 기법을 전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 센터장은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로 만들고 싶다"며 "직원들이 과부하에 걸려 소진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시스템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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