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세력 척결" 45년만의 계엄, 尹정부 단명 자초
파이낸셜뉴스
2025.04.04 18:34
수정 : 2025.04.04 23:05기사원문
계엄부터 탄핵까지 '격동의 123일'
2024년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12월4일 1시 국회 계엄해제안 의결
12월14일 탄핵안 찬성 204표 가결
12월31일 내란 혐의 체포영장 발부
헌재, 38일 최장기간 평의거쳐 파면
이번 대통령 탄핵은 발단이 명확하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예고도 없던 비상계엄 선포이다. 윤 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그 시발점이 됐던 계엄 사태부터 이날까지 주요사건들을 짚어봤다.
계엄 선포만으로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국회 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봉쇄하며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다음 날인 4일 0시27분 특전사와 수방사 병력들이 국회 본청에 진입했고, 국회의원 및 보좌진과 충돌하기도 했다. 여야 의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3시간 후 대국민담화에 나서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우면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고, 새벽 4시30분에 윤 대통령이 자리하지 않은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됐다.
불과 6시간 만에 제압당했지만 45년 만의 계엄, 그것도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입했다는 충격이 커 윤 대통령 탄핵소추는 빠르게 진행됐다. 계엄 해제 당일 오후 야권은 1차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튿날인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다만 7일 국민의힘 불참으로 투표가 불성립돼 폐기됐다.
첫 탄핵소추 시도가 무산된 7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 나서 계엄 사태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경쟁적으로 계엄 사태 수사에 달려들었다. 9일 윤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졌고, 이후 군·국가정보원·경찰 등 관련자들에 대한 전방위 조사와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12일 재차 대국민담화에 나서 야권이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며 국헌회복을 위한 계엄 선포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같은 날 야권은 두번째 탄핵소추안을 제출했고, 14일 탄핵안은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투표에 나서며 찬성 204표로 가결돼 헌재로 넘겨졌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착수되자 수사기관의 압박도 거세졌다. '내란죄' 혐의로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공수처와 경찰은 윤 대통령 삼청동 안전가옥과 관저, 대통령경호처, 대통령실 등 압수수색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여러 차례 출석 거부에 30일 체포영장이 청구됐고 다음 날 바로 발부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는 장면을 연출하기까지는 보름이 소요됐다. 경호처와 국민의힘 의원들, 지지자들의 저지에 체포인력이 진입하지 못하다가 1월 14일 공수처·경찰·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협의했고, 15일 윤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다.
윤 대통령은 구치소와 헌재를 오가며 탄핵심판 변론에 직접 출석했다. 3차 변론기일부터 등장해 2월 25일 최종변론에도 직접 나섰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직무에 복귀하면 1년 안에 헌법 개정에만 집중하고 조기에 하야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7일 윤 대통령은 구속이 취소되며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왔다. 구속돼 있는 동안 최고조에 이른 지지세에 감격한 듯 직접 지지자들 사이를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헌재의 한 달이 넘는 장고 끝에 4월 1일 선고기일이 정해지고 4일 결국 파면되기까지 윤 대통령은 별다른 행보나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서울구치소에서는 '옥중정치'를 펼쳤다고 볼 만했지만 정작 구치소를 나온 후에는 탄핵심판 선고까지 겸허하게 기다렸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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