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이끌 "슈퍼 엄마"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2019.07.20 05:59
수정 : 2019.07.20 05:59기사원문
"탁아소 우르줄라", "검열줄라", "슈퍼엄마"
이 별명들은 모두 올해 첫 여성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뽑힌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을 가리키는 말이다. 7남매의 어머니이자 40대에 처음 정치에 발을 들인 그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정가의 관심을 끌었고 10년 넘게 차기 총리후보로 불렸다. 그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충돌하면서도 살아남았던 것은 감출 수 없는 성과와 업무 능력 덕분이었다.
사실 그는 지난 2014년에도 EU 집행위원장 후보로 거론됐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연합(CDU)의 실력자들 가운데서도 폰 데어 라이엔처럼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물은 드물었다. 1958년 10월 8일 벨기에 브뤼셀의 익셀 지구에서 태어난 폰 데어 라이엔은 올해 한국 나이로 62세이며 13세가 될 때 까지는 브뤼셀에서 자라며 국제학교를 다녔다. 그의 아버지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는 초창기 EU 집행위원회에서 1세대 범유럽 공무원으로 일했고 훗날 독일 니더작센주 총리까지 오른다. 폰 데어 라이엔은 1971년에 아버지를 따라 니더작센주의 하노버로 이사한 뒤, 아버지가 중도 보수 성향인 CDU 소속으로 주 총리에 당선된 이듬해인 1977년에 독일 괴팅겐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지위와 정치 성향 때문에 당시 서독의 극단 좌파 조직 '적군파'의 납치 대상에 올라 1년 만에 영국으로 도망간다. 폰 데어 라이엔은 '로즈 라드슨'이라는 가명을 쓰며 도피 생활을 하다 런던 정경대에 입학해 다시 경제학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1979년에 독일로 돌아와 갑자기 전공을 바꿔 다음해 하노버 의대에 입학했으며 1987년에 의사 면허를 땄다. 폰 데어 라이엔은 1년 전에 같은 의사이자 남편인 하이코 폰 데어 라이엔과 결혼식을 올렸다. 모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던 폰 데어 라이엔은 1990년에 아버지의 정당이었던 CDU에 입당했고 남편이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수련의로 일하게 되자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1992년부터 4년간 아이를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그는 이런 경험 때문에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게 됐다.
2002년까지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폰 데어 라이엔은 조금씩 하노버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45세가 되던 2003년에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빠르게 성장했으며 주정부에서 사회복지 및 여성·가족·보건 장관을 맡았다. 애초에 7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폰 데어 라이엔은 본인도 대가족을 꾸려 7남매를 낳아 정가에서 가정적인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주의회 선거 출마 당시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친을 5년이나 집에서 간병해 '효녀'라는 평판도 얻었다. 자녀가 없었던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당시 핵심 이슈였던 저출산 및 가족 부양 문제를 공략하면서 보수 표심을 잡기 위해 폰 데어 라이엔을 포섭해 그를 예비 내각 명단에 넣었다. 폰 데어 라이엔은 메르켈 정부에서 가정여성부 장관(2005~2009), 노동사회부 장관(2009~2013), 국방 장관(2013~2019)을 역임했다.
그는 보수 정권에서 일하면서도 좌파적인 정책을 도입했고 이를 거침없이 추진해 이목을 끌었다. 폰 데어 라이엔은 가정여성부 장관 시절 아이들을 위한 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부모수당'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북유럽식 복지 체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2007년에는 남성들에게도 2개월 추가 유급 육아휴직을 제공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노동사회부 장관을 지내는 동안 야당의 정책을 가져와 최저임금제 도입을 밀어붙였고 국방 장관에 취임하자 '강한 독일군' 건설을 위해 병력 상한선을 높이고 장비와 장병 복지 개선에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불도저식 운영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2006년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슬람 이민자들의 반발을 샀으며, 아동 포르노 단속을 추진하면서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자는 태도를 보여 검열줄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노동사회부 장관 시절 기업 이사회에 강제로 여성 임원들을 할당하는 제도를 주장하다 메르켈 총리와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또한 폰 데어 라이엔은 국방 장관 업무를 수행하며 심각한 장비 및 인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고 독일군 내 극우세력 활동, 무리한 모병 홍보 등으로 비난받았다. 최근에는 해군 훈련함 정비와 관련해 국방 차관이 고임금 고문들을 고용해 구설수에 올랐다. 폰 데어 라이엔은 이와 관련해 올해 말 하원 청문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그는 국방장관을 지내는 동안 각종 사건이 터지면서 차기 총리 후보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달 초만 하더라도 혼선을 거듭하던 EU 집행위원장 인사에 폰 데어 라이엔을 제안한 인물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메르켈 총리의 우파 인선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특히 EU 집행위의 여성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폰 데어 라이엔의 좌파 성향과 프랑스어 실력이 이번 인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다.
어찌됐든 오는 11월 1일부터 EU를 이끌게 되는 폰 데어 라이엔은 역사상 가장 분열된 EU를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추려보면 일단 그는 EU 집행위의 성비를 1대 1로 맞출 예정이다. 또한 폰 데어 라이엔은 2050년까지 EU의 온실가스 배출 근절을 목표로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EU 자체적인 군사력 강화를 천명했다. 그는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에 대해 만약 영국이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면 올해 10월 31일로 예정된 탈퇴 기한을 미뤄줄 수 있다며 EU와 영국이 완전히 분리되는 '하드 브렉시트'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인선이 확정 되자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는 이민자 분할 수용에 대해서는 동유럽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할당제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EU를 미국의 합중국 제도같이 같이 보다 긴밀하고 통합적으로 이끌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럽의회의 반EU주의자들은 그를 두고 "중앙집권적이고 비민주적인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상황이다.
폰 데어 라이엔이 조각난 유럽을 지휘하기 위해 이전처럼 강력한 추진력을 다시 꺼낼 지, 아니면 좀 더 타협적인 태도를 보일 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만 알 수 있을 듯하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