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가성비 떨어져… 그 노력을 차라리 재테크에 쏟겠다"
2022.01.05 16:35
수정 : 2023.04.04 17:56기사원문
청년세대의 자족(自足)은 승진과 출세에 대한 욕심을 거세시켰다. 청년들은 불안한 직장생활, 존경받지 못하는 선배를 보면서 주식·부동산과 같은 투자로 관심을 옮아갔다. 지금의 만족이 중요해진 만큼 출산 거부도 심화되고 있다.
■"승진보다 투자"
5일 구인구직 서비스 업체 '사람인'에 따르면 20·30대 1865명의 '직장 선택 기준'을 조사한 결과 연봉(33.8%)이 1순위, 워라밸(23.5%)이 2순위였다. 커리어 성장 가능성(8.7%)은 5위에 그쳤다.
흔히 직장 내에서 승진은 궂은일을 자처하면서 나오는 결과지만 청년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최근 한 모빌리티기업 연구소에서 최초로 육아휴직을 쓴 김모씨(33)는 "육아휴직을 쓸 때 주변에서 승진을 포기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며 "온갖 힘든 일을 하며 얻은 결과가 고작 월 50만원 월급 인상인데, 그럴 거면 재테크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승진코스였던 본사 근무나 인사부서의 인기는 떨어진 지 오래다. 한 캐피털업체 인사부서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9)는 "지점이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고 자유로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선호도가 높다"며 "인사부서에 희망자가 없어 일일이 후배들을 찾아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승진을 소위 '가성비' 떨어지는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일자리 전망 국민인식에 따르면 2030세대 75.1%는 '물가에 비해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며 근로소득에 대한 기대감을 접고 주식, 비트코인 등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진도 거부하고 투자에 참여하고 있지만 가계부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통계청이 공동으로 진행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30대 가구주의 부채는 평균 1억1190만원으로 전년(1억82만원)보다 11.0% 늘었다. 30대의 빚은 지난해 처음으로 평균 1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모든 연령대 중 유일하게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미래 고민 여력조차 없어"
자족하는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은 0.84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는 서울의 경우 지난해 결혼 건수는 4만4746건으로 전년(4만8261건)대비 3515건(7.3%) 감소했다. 지난 2000년 결혼건수 7만8745건 대비 3만3999건(43.2%) 감소한 것이다. 합계 출산율도 2000년 1.28명에서 지난해 0.64명으로 20년 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감소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쌍둥이 아이를 출산하며 육아휴직에 들어간 윤모씨(35)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됐다는 생각에 행복했지만 사회 진출이 막혔다 생각하니 우울감이 앞선다"며 "큰 용기가 없는 이상 출산은 손해 보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가 청년들을 자족에 빠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류기환 '청년하다' 대표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열심히 살면 집을 마련하고 성장하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지금의 '자족' 개념은 청년 세대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여력조차 없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 시대 청년의 문제는 정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해 미래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상호작용의 빈도수가 낮아지면서 개인주의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