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없어 남녀 구분 못해… 화장실 앞 막막한 시각장애인
2022.06.06 18:01
수정 : 2022.06.06 18:01기사원문
■규정 맞게 설치된 공공시설 38.8%
6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24일부터 10월 22일까지 약 5개월간 전국 도·시·군·구청 287개소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한 결과 6021개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조사 항목 중 적정 설치된 시설은 38.8%에 불과했다. 특히 화장실에 해당하는 '위생시설' 항목에서 적정 설치율은 15.1%에 그쳤다. 위생시설이 설치됐지만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는 48.8%, 아예 설치되지 않은 비율은 36.1%였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등 편의법)에 따르면 지역자치센터는 의무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편의법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위생시설의 경우 화장실 입구 옆 벽면 1.5m 높이에 남자용과 여자용을 구별할 수 있는 점자표지판을 부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점자 표시판이 부착되는 벽 30cm 전면에 점형 블록을 설치하거나 시각장애인이 감지할 수 있도록 바닥재의 질감 등을 달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법이 존재함에도 지켜지지 않으면서 고통받는 쪽은 시각장애인들이다. 여성 시각장애인 정모씨(50)는 "실제로 남녀 구분이 어려워 남자 화장실도 많이 들어가게 된다"며 "보통은 다른 여성 분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라 들어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간혹 점자가 붙어 있다고는 하는데 어디 붙었는지 모른다"며 "법으로 정해진 위치에 점자가 있지 않으면 온 벽을 다 만져보고 파악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저시력 장애인 최모씨(40)도 "점자가 없는 곳도 많고 엉망으로 설치된 곳이 많다 보니 확인도 안 하게 된다"며 "최대한 아는 건물로만 다니고 밖에 나가서는 물도 거의 안 마신다"고 토로했다.
■일반화장실엔 예외조항
이에 시각장애인과 전문가들은 장애인 등 편의법 내 '예외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행법을 보면 '일반 화장실'의 경우 점자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의무인 것은 '장애인 화장실'이다. 문제는 시각장애인이 주로 이용하는 화장실은 '일반 화장실'이며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불편함이 크다는 점이다.
정씨는 "장애인 화장실은 휠체어 이용자에 맞춰져 있으므로 너무 넓어 시각장애인이 공간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일반 화장실에 점자가 설치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예외조항으로 인해 시정도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지자체 청사를 비롯해 법에서 규정한 모든 건물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 미설치되거나 부적정 설치된 편의시설은 2만5600건이었으나 이 가운데 시정명령이 내려진 건은 5647건에 불과했다. 김경미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각장애인들이 장애인 화장실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현행법에 시각장애인 편의에 대한 내용이 더욱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