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 상대방 누구로 해야 할까?
2024.10.02 22:00
수정 : 2024.10.02 22: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행정소송에서는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지부터가 난관이다. 누가 내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나의 행정행위가 다양한 행정기관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실제 사례를 보자. 갑 회사가 기업이전 지원 보조금의 지급을 구하는 것에 대하여 지식경제부장관(현재는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그 역할을 한다)이 광주광역시장에게 반려하자 광주광역시장이 다시 갑 회에 보조금 지급을 반려하는 처분을 한 사안이 있었다. 행정소송의 피고는 누구일까. 광주광역시장이다(대법원 2011. 9. 29. 선고 2020두269339 판결). 결국 국민을 상대로 보조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지식경제부장관이 아니라 광주광역시장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을이 감사원의 징계요구에 따라 소속 기관의 장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고 하자. 억울한 을은 소속 기관에 항의를 한다. 소속 기관 징계 담당자는 자신으로서는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감사원에서 징계를 하라고 했는데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그래서 을이 감사원에 ‘징계요구’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각하된다. 을은 감사원이 아니라 소속 기관의 장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한다(대법원 2016. 12. 27. 선고 2014두5637 판결 참조).
최근 대구에서 HIV 감염인이 장애인 등록을 거부당한 뒤 구청장을 상대로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재판 진행 중 당사자 적격이 문제되었다. 신청을 접수한 것은 구청장이 아니라 동장이기 때문에 처분의 상대방은 동장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원고는 동장이 구청장의 위임을 받아 사무 일부를 처리하는 하부 행정기관에 불과하므로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 등록 업무 처분청인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반박했다. 원고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장애인등록 업무라는 단위에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청장이 상대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동장을 상대로도 소송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신제품(NEP) 인증 유효기간 연장 거부 통보에 대해, 그 업무의 소관 기관이라고 보이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다(사실, 이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소속의 국가기술표준원이 처리하는 업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원은 그 업무가 위 협회에 '위임'된 것이므로,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20. 2. 7. 선고 2019구합62666 판결).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실제 권력을 가진 자와 처분을 하는 자가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실제 권력을 행사한 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행정소송의 법리는 그 실질적 권력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자신의 명의로 처분을 한 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누가 그 처분을 형성하는데 더 실질적으로 관여했는지는 행정의 내부적 문제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2두22904 판결 등 참조).
쉽게 생각하면 행정소송은 그 행위를 ‘자기 이름으로 한’ 명의자를 상대로 하면 된다. 그 명의자가 권한이 없는 자라면 ‘권한 없는 자의 행정행위’이므로 무효라고 선언될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걱정된다면 피고를 관련된 여러 명으로 지정해도 되겠지만, 적절한 피고를 정확히 안다면 여러 피고를 끌어들이는 데 따른 비용과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