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신산업 1000조 투자… 차세대 기술 주도권 잡는다

      2023.01.01 18:39   수정 : 2023.01.01 20:11기사원문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제시한 위기 극복의 해법은 '투자 확대'를 통한 '핵심기술 개발'로 요약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미래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다가는 차세대 기술 주도권을 빼앗겨 생존경쟁에서 단숨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위기에서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규제완화, 세제지원 등 국가 차원의 파격적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황에 투자 줄이니 시장 도태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과거 경기침체 국면에서 투자를 축소했던 글로벌 기업들은 업황 회복 이후 기술 우위를 잃으며 경쟁사에 시장 주도권을 내줬다. 현재 글로벌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점유율 1위인 인텔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시절 투자를 늘리며 오히려 몸집을 불렸다.
당시 인텔은 영업이익률이 30% 이상 급감하는 경영 위기에 봉착했으나,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 확대해 업계 선두를 지켰다. 반면 '고속 CPU'를 개발해 1999~2000년 2년 연속 인텔의 3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나타냈던 업계 2위 AMD는 수익성 악화 우려로 투자를 중단함으로써 인텔을 역전할 기회를 놓쳤다. 실제 인텔의 1999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중이 10.6%에서 2002년 15.1%로 증가했지만, AMD는 같은 기간 22.2%에서 16.7%로 감소했다.

삼성전자가 굴지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도 위기 돌파를 위한 과감한 투자였다. 버블 위기 여파로 D램 가격이 폭락하던 2000년대 초 삼성전자의 경쟁사였던 일본의 엘피다는 당시 불황에 최신 공정이었던 300㎜(12인치) 웨이퍼 공정 전환을 9개월 연기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수십조원을 추가 투자해 차세대 기술 개발을 마친 끝에 12인치 웨이퍼로 만든 120나노 기반 D램 양산을 시작하며 반도체 초격차를 실현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3·4분기 누적 기준 R&D 투자에 전년동기(16조1857억원) 대비 14% 증가한 18조4556억원을 쏟고 있다.

재계는 글로벌 복합 경제위기 장기화 상황에서도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2026년까지 계획한 총투자규모는 1000조원에 달한다.

삼성그룹은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AI)·차세대 정보통신(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2026년까지 450조원을 투자한다. 지난 5년간 투자한 330조원 대비 120조원이나 늘어난 규모로 연평균 투자규모만 30% 이상 늘렸다.

SK그룹은 배터리·바이오·반도체 등 3대 핵심산업에 2026년까지 247조원을 투입한다. LG그룹도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배터리·바이오·AI·차세대 디스플레이, 전장 등에 국내에만 같은 기간 106조원을 쏟는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2030년까지 95조5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기아도 2026년까지 28조원을 투입한다. 이는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포드보다도 더 공격적인 투자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토대로 2030년엔 전 세계 전기차 생산 규모를 323만대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첨단산업 육성 위한 초당적 지원책 시급

전문가들은 위기에서 투자를 확대해야만 경쟁사들과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첨단 산업일수록 경기 변화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추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져 기업 소멸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올해 경기 전망이 워낙 어두워서 기업이 투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어려울 때 투자를 하면 경쟁기업과의 격차를 충분히 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의 전방위적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술안보와 연계된 첨단산업이 기업을 넘어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엄중한 상황인데도 여야 정쟁으로 각종 산업 지원 법안들이 산업계의 호소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첨단전략기술에 투자하는 대기업의 세액공제 비율을 현행 6%에서 8%로 2%p '찔끔' 늘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경쟁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설비투자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대만도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R&D 및 설비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계는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최소 3%p 이상 법인세율 인하도 요구했지만, '재벌 특혜' 명분을 내세운 야당의 반대 등에 현행 과표구간별로 1%p씩 세율이 하향 조정되는 데 그쳤다.


홍 교수는 "투자에 적극 나서는 기업에는 정부가 규제완화나 조세 지원으로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기업 투자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국가 미래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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