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어디로 갔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2일 오전 증권시장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현대차 지분 6.1%, 1271만주를 주당 1만5600원씩에 전격적으로 매각했다. 21일까지도 매각 방향을 놓고 논란을 벌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그룹측은 개인 투자자와 국내 기관투자가들에게 지분을 장내 매각했다고 밝혔다. 현대 관계자는 “이번 지분 매각에 따라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 지분이 3% 미만으로 낮추어졌으며 이로인해 현대그룹에서 현대자동차를 계열분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왕회장 지분은 누가 인수했나=현대그룹 측은 23일 지분을 인수해간 매수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외국계 자금은 없으며 투신사 등 국내 기관과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장내에서 주식을 매수했다는 것이 현대그룹의 설명이다.
현대측은 이날 증시가 열리기 전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주당 1만5600원에 현대차 주식을 살 매수 세력들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정해놓고 물량만 배정하는 지정가격 공개입찰의 방식이었다는 것.
실제로 대한투신증권 등 3개 투신사들이 90만주가량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대한투신증권은 이날 50만주를, 현대투신증권은 30만주, 삼성투신증권은 10만주를 각각 매수했다.
대투증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현대측이 시장에 내 놓은 가격이 전일 종가인 1만6800원에 비하면 적정 수준”이라며 “기관 수요예측에 따라 주가내재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대량으로 사들였다”고 설명했다.
현대측과 현대차 지분 인수 협상을 벌여온 자딘플레밍사는 이날 전혀 지분매수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딘 플레밍은 매물을 받기 위해 1만5100원선에서 매수주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측도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점=그러나 증시주변에는 이번 지분 매각에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매각 대금이 2000억원에 이르는 지분 매각이 불과 수분만에 종료된 점과 정 전 명예회장 측이 그동안 보여온 현대차 지분에 대한 집착 등으로 미루어 볼때 매수자를 지정하지 않고 무작정 지분을 시장에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현대차 지분을 인수한 세력 중 일부라도 정몽헌 현대그룹 아산 이사회의장의 우호 세력이 포함되어 있거나 매수 자금 면에서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만에 하나 이번 지분매각과정에서 증권가에서 말하는 소위 ‘파킹(일시적으로 남의 명의로 주식소유인 명의를 바꾸는 행위)’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개입되었다면 현대차의 계열 분리 자체가 문제시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입장=공정위는 현대가 자동차 계열분리때 제출한 주식매각 현황을 자세히 조사해야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이날 “현재로서 현대측이 매각한 자동차 지분 현황을 알 수 없어 이렇다할 입장을 나타낼 수 없다”며 “현대의 자동차 계열분리 신청때 함께 제출한 주식매각 현황을 바탕으로 동일인이나 특수관계인과의 관계를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식 매입자가 동일인이나 특수관계인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현행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 요건이 맞으면 승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난 98년부터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이 미국의 유명 금융·투자회사에 있는 사람을 대거 국내에 불러들여 자동차 계열분리를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대는 자동차 계열분리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지분경쟁으로 경영권 장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현대측이 사전에 공정위와 협의를 했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MH측 입장=현대구조조정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21일 미국의 투자증권회사인 자딘 플레밍이 1000만주 이상을 매입하겠다고 의사를 밝혀왔으나 매각조건이 안 맞아 사전 입찰을 통한 장중 매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자딘 플레밍은 현대측이 매각을 희망한 22일이 촉박해 당초 제안한 매입 희망 주식수에 훨씬 못미치는 250만주밖에 소화가 안되는 데다 가격 조건에서도 낮은 가격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대는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는 제3자로 미국계 자딘 플레밍이라고 흘리며 관심을 따돌린 것으로 보인다.현대측은 이날 아침 입찰 결과 1700만주의 매수주문이 들어왔으며 매수가격은 1만5600∼1만5800원이라고 밝혔으나 비밀리에 장내 매각을 택한 것은 현대자동차등 다른 기관의 매입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식을 매입한 개인투자자 중에는 LG증권 테헤란로 지점에서 100만주를 구입한 개인투자자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인투자자의 신원에 대한 관심이 몰렸으나 아직까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에 대한 신상은 증권거래법으로 합당한 사안이 있을때 금융감독원을 통해 증권거래소에서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은 알수 없다”며 “개인투자자들의 신상이 파악되는대로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자동차 주식 매입자 리스트를 작성해 계열분리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K측 반응=현대자동차측은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주식을 매입한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들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긴급 탐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채권단이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자동차쪽으로 넘길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에 MH측이 갑자기 직접 지분 매각으로 급선회한 것에 주목한다”며 MH측의 작전에 휘말린 것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그는 또 “자동차의 계열분리를 약속대로 지키려했다면 이같은 장내거래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분 인수 기관이나 개인이 정 전 명예회장 또는 MH측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minch@fnnews.com 고창호 김환배 박만기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