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조주청의 지구촌 골프라운드] 이홀에선 강이 저홀에선 도시가 한눈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8.29 04:59

수정 2014.11.07 13:08


이과수폭포 앞에 서면 인간은 초라한 미물이 된다.

낙차 폭이 80m가 넘는 275개의 폭포가 2.5㎞에 걸쳐 으르렁거리며 내리쏟는 물바다는 천지개벽 바로 그것이다.

이과수폭포의 브라질쪽 거점도시는 포스도 이과수이고 여기서 우정의 다리를 건너 파라냐강을 넘으면 바로 파라과이의 시끌벅적한 국경면세지역 푸에르토 스트로 에스네르가 된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2㎞쯤 내려가면 도도히 흐르는 파라냐 강가에 챔피언십 골프코스 파라냐골프클럽이 자리잡고 있다.

아침 9시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열기가 훅훅 달아오르는 것만 빼면 적당한 언듀레이션에 페어웨이와 그린이 비단을 깔아 놓은 것 같다.
거기에 대통령 골프, 더더욱 좋은 것은 그린피·캐디피·클럽대여비 모두 합쳐 봐야 우리 돈 2만원이 채 안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아래로 누런 파라냐강이 보이고 어떤 홀에선 국경면세도시의 빌딩들이 한 눈 가득 들어온다. 어떤 곳에서는 산비탈의 달동네가 보인다.

땀을 흠뻑 흘리며 계속 음료수만 퍼부어 대다가 18홀을 마치고 나니 더위를 먹었는지 몸은 납덩이를 단 것처럼 가라앉고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도대체 식욕이 안 당긴다.

“아―이럴 때 쐬주 한 잔에 고사리·대파·토란을 넣고 푹 끓인 얼큰한 멍멍탕 한 그릇 먹었으면…”하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다.

한 달이 넘게 남미를 돌아다니며 느끼한 것만 먹다가 꿈에도 못 잡을 음식을 떠올린 게 탈이다.

남대문 시장같은 파라과이 국경면세 지역 골목을 돌아다니며 바나나 두어개로 점심을 때울까 궁리하고 있는데 어! 이게 뭔가.

내가 더위먹고 ‘멍멍탕’ 생각하다가 진짜로 돌아버려 헛것을 본 게 아닐까.

내 눈앞에 글씨는 조잡하지만 우리 글자로 ‘봉봉식당’이란 간판이! 들어가 자리에앉자 메스티조 현지인 아가씨가 다가와 우리말로 “무엇을 드시겠어요”라고 묻길래 “가장 잘하는 게 뭐요”라고 했더니 그녀 입에서 서슴없이 나온 말이 ‘멍멍탕’이다.

이게 도대체 꿈인가 생시인가.

내 평생에 가장 감격적으로 가장 맛있게 먹은 멍멍탕이다.

박서한씨는 광명사거리에서 ‘봉봉식당’을 운영하며 십 수년을 맛깔 좋은 멍멍탕집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지겨워서 보따리 싸들고 지구 반대편 이곳으로 와 전자제품 가게·옷가게를 운영, 3년 만에 다 말아먹고 배운 도둑질, 이름도 그대로 이곳에서 멍멍탕집을 다시 차린 것이다.

강 건너 브라질의 포스도 이과수와 이곳에 우리 교민이 백여명이나 살고 있다는 박서한씨의 얘기다.

“멍멍이는 어떻게 구합니까.”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털어놓는다.


“인디오들한테 부탁하면 개를 잡아 털을 태우고 깨끗하게 손질해서 포대에 담아 밤중에 가지고 옵니다.”

파라과이는 남미의 소국이지만 아직도 보수파 군부의 파워가 막강한 가톨릭 국가로 만약에 멍멍탕 영업이 발각되는 날엔 식당 문을 닫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감방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먹기는 잘 먹었는데 이국만리에서 또 다시 그 장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박서한씨의 세파에 찌들린 얼굴을 보니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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