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역사를 보면 노동절은 대개 대선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자 예비 대선으로 간주됐다. 이날을 전후해 실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대선 결과와 일치한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대선을 9주 앞둔 지난 4일 노동절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의 지지도와 선거전략을 점검해 보기에 좋은 시점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이들의 중간 성적표는 ‘막상막하’ 또는 ‘고어 후보 우세’다.
노동절날 USA투데이와 CNN이 공동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앞서 1일 실시된 뉴스위크 조사에서는 고어 후보가 부시 후보를 53%대 41%로 앞서는 양상을 보였다.
지지도 조사에서 지난 2년간 줄곧 부시에게 밀렸던 고어가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뒤집기에 성공, 지금까지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해 고무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고어의 움직임부터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고어는 ‘하루 27시간 유세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건설노동자에서부터 월 스트리트의 화이트칼라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들을 상대로 무차별 표밭갈이에 바쁘다.
반면에 ‘강력한 리더십’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던 부시 후보는 처음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선거유세도 다소 맥이 풀린 양상이다.
부시의 초조함은 후보간 TV토론회에 벌써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립기구인 대통령후보토론위원회가 세 차례의 공식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부시는 공식 토론회는 두 차례로 줄이고 대신 NBC와 CNN방송을 통해 별도의 토론회를 갖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어는 부시가 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공식 토론회를 일부러 기피하고 있다며 토론위원회가 제안한 3회에 걸친 공식 토론회라면 언제 어디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오히려 역공을 펴고 있다.
부시의 선거운동은 정책 경쟁보다는 고어 후보가 취약한 ‘개인의 리더십과 자질’을 거론하는 전략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는 고어의 정책 중심 전략을 맞받아 자신의 강력한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대응 전략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리더십 전략에 내용이 별로 없다는 지적과 함께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치적을 앞세운 고어 후보의 전략에 밀려 이마저도 약발이 쉽게 먹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보건·교육·사회보장 등 국민적 관심이 쏠린 정책과 관련해 고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적 번영이 정치적 중도파와 신경제의 수혜자인 중산층 이상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민주당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고어측은 전통적으로 공화당과 가까운 백인 남성 유권자를 집중 공략하고 있어 부시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역전된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부시는 고어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도 구사하기 시작, ‘노인의료보장(메디케어)’ 공약이 공무원들로 하여금 의사 처방권을 침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등 민주당 정책에 대해서도 공세를 펼쳐보지만 이는 대안 제시없이 흠집만 내는 전략이라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11월 7일 선거에서 전체 대통령 선거인단 538표 가운데 270표 이상을 얻은 후보가 백악관 주인이 된다. 고어의 분발이 눈에 띄는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절이 지났는데도 승자를 점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워싱턴 포스트가 이번 대선을 20년만에 처음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만큼 치열한 선거라고 지적한 가운데 대중적인 지지도에서는 고어가 선전을, 선거인단 지지도에서는 부시가 아직 우세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근에는 플로리다·미시간 등 16개 경합지역에서 고어가 처음으로 우세를 주장하고 나서 예상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 rock@fnnews.com 최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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