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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왜 오르나]소비국 과세 선물투기등 복합요인 작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15 05:04

수정 2014.11.07 12:55


유가,정확히 원유가 폭등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고유가 현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유가 급등의 실질적인 배경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석유 소비국들은 공급부족이 유가 급등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소비국의 과도한 세금과 정제 과정상의 문제·투기·심리적 요인 등이 진짜 원인이라고 반박한다. OPEC은 14일자 공식성명에서 “현 시장상황과 관련해 일반에게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원유가 급등의 진짜 원인은 ▲정유업계의 병목현상으로 초래된 석유제품 시장의 물량 부족 ▲원유 선물시장의 투기 ▲산유량 감소 추세를 틈탄 브렌트유의 매점매석 ▲경질유와 중질유 간 차별성 확대 등”이라면서 “이것들은 OPEC의 통제권 밖에 있는 요인들”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감했던 석유 수요는 1999년을 고비로 가파르게 늘기 시작했다.
침체에 빠졌던 아시아 경제의 빠른 회복과 미국·유럽의 유례없는 호황으로 수요가 급팽창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OPEC은 1999년 4월부터 감산합의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는 곧 유가급등으로 이어져 유가는 걸프전 이후 10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OPEC은 올 들어 세 차례 증산(330만배럴)을 단행했지만 치솟는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재 산유국 대부분은 원유 생산설비를 완전 가동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정도만 증산여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이란·이라크·리비아를 이른바 ‘불량국가’로 지목,석유산업 투자를 가로막음으로써 공급불안이 초래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라크의 경우 경제제재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사우디와 맞먹는 하루 800만배럴의 생산능력을 갖췄을 것이다. 이란·리비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유 수급불안은 투기로 이어졌다. 수요는 치솟고 공급은 제한된 상황에서 향후 가격을 예측해 거래가 이뤄지는 석유시장에선 투기가 작용할 여지는 더 크다. 심리적 요인에 따라 유가가 춤추는 현상도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석유수요가 급등하면서 3100여척에 달하는 전세계 유조선은 거의 완전 운항 상태에 들어갔다. 산유국들이 증산한다 해도 원유를 실어나를 유조선을 찾지 못해 제때 수송이 어렵게 됐다. 실제로 사우디는 지난 7월 수송문제를 들어 증산을 유보한 바 있다.

석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정제과정의 문제와 난방유 수요가 폭증하는 겨울을 앞두고 있다는 계절적 요인도 유가폭등을 재촉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산유국들은 미국과 유럽 등 석유소비국들의 휘발유·난방유 가격폭등을 산유국 책임이 아니라 높은 석유세 탓으로 돌렸다. OPEC은 14일자 성명에서 “유럽연합(EU)의 경우 석유 제품 가격 가운데 석유 수출국 몫으로 떨어지는 것은 16%에 불과”하다면서 “또 다른 16%는 정유회사들과 중간상인들에게,나머지 68%는 소비국 정부들에 (세금 등으로) 돌아간다”고 석유 부가가치의 행방을 행처(行處)별로 적시했다.

그러나 이같은 OPEC의 주장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석유세를 내릴 경우 수요가 크게 늘어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한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오스트리아 빈 무역관은 외국 전문가들의 전망과 분석을 종합,15일 이색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유가상승 원인은 국제 현물시장 투기꾼들의 ‘농간’과 세계 주요 정유사의 경영방침에 기인한다.

사실 80년대까지 세계 메이저 정유사들은 정유를 상당량 비축한 뒤 유가가 오르면 원유 매입을 줄여 수요 감소를 유도하고 유가가 내리면 매입을 늘려 가격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90년대 적시 생산·공급이 유행하자 정유사들도 비축량을 줄였다. 이로써 생긴 여유자금은 다른 사업에 투자했다.
이런 식의 정제방식이 굳어진 까닭에 지금은 유가가 올라도 매입량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다.

/ jslee@fnnews.com 이진수 민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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