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의 지도를 바꾸는 핵심 열쇄인 은행간 2차 합병의 청사진이 나왔다.
이에 따라 물밑에서 여러가지 합병구도를 모색해 오던 은행들의 합병 움직임도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은행별로 이해가 엇갈리는 부문이 너무 많고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분명한 해답이 없는 상태다. 정부가 원하는대로 조기에 매끄러운 은행 짝짓기가 이루어질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림은 좋다=정부가 마련한 은행 구조조정은 크게 두갈래다. 하나는 잠재손실을 모두 반영할 경우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기준선인 8%에 미달하는 은행이나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여기서 빠지는 우량은행을 대상으로 한다. 이른바 부실은행과 우량은행을 따로 다루는 셈이다.
부실은행들은 이달말까지 경영개선계획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고 엄격한 심사를 받게 된다. 한빛·조흥·외환·평화·광주·제주 등 6개 은행이 대상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도 같은 범주에 들어가지만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하지는 않는다. 제일은행은 뉴브리지 캐피털에서 인수했고, 서울은행은 도이체방크가 자문은행으로 참여해 별도로 경영정상화를 추진중이기 때문이다.
6개 은행의 생사를 결정하는 경영평가는 ‘경영평가위원회’에서 맡아 10월중 결론을 내게 된다. 경영평가위는 회계·법률·학계·국제계 전문가 등 8명 이내로 이달중 구성되며 정부로부터 독립된 활동을 하게 된다. 경영평가위가 6개 은행중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평가하는 은행은 이른바 ‘부실은행’의 딱지를 뗄 수 있다. 반면 자체정상화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은행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음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즉 정부 주도의 합병대상이 된다. 정부는 부실은행들을 국유화하고 구조조정과 대형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운 다음 2002년 하반기부터 정부 지분을 다시 매각해 민영화할 방침이다.
우량은행은 정부의 개입없이 자율적으로 생존을 위한 합병을 모색할 수 있다. 정부는 우량은행들의 합병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본확충,부실채권 정리 등을 도와주고 자회사 설립시 인허가 우대 등 제도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2차 은행 구조조정이 정부 생각대로 진행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정부는 그동안 제기된 각종 합병변수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해답을 내지 않았다. 정부 청사진이 이미 여려차례 밝힌 내용들은 집대성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될 은행이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 지주회사의 핵에 해당하는 대형 시중은행은 한빛·조흥·외환 등 3곳이다. 그러나 이중 조흥은행은 잠재부실에 100% 이상 충당금을 쌓고도 BIS 비율이 10%를 넘었다며 독자생존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방크와 증자협상을 벌이고 있어 정부 마음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경영평가위가 객관적으로 이들 은행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평가 결과 실제로 조흥·외환은행이 금융지주회사 편입대상에서 빠질 경우 모양이 우습게 된다. 한빛은행과 중소형 은행인 평화·광주·제주은행 정도를 지주회사로 묶어서는 정부가 원하는 세계적 수준의 대형은행은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량은행간 합병도 걸림돌이 수없이 많다. 우량은행간 합병의 주체는 국민·주택·신한·하나·한미 등 5개 은행이다. 이중 신한은행은 독자 금융그룹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나와 한미은행은 연내 합병을 모색중이지만 이들만 합쳐서는 대형화에 한계가 있다. 하나와 한미가 합쳐도 그 규모와 수익성은 국민은행에 미치지 못한다. 하나·한미 합병후 주택은행과의 추가합병 전망도 있지만 주택은행의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이란 변수가 있다. 주택은행은 증시 상장이 성사되기 전에는 합병을 시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장전 합병을 추진할 경우 합병 대상은행의 3년간 경영자료를 모두 제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게 주택은행의 설명이다.
경영개선계획서 평가결과 합격 판정을 받는 은행과 기존 우량은행의 합병 가능성도 합병 구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조흥은행이 독자생존을 인정받을 경우 기존 우량은행내에서 합병을 모색하던 은행들은 또 다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외환은행까지 금융지주회사 편입대상에서 빠져 나오면 은행간 합병 시나리오는 더 더욱 복잡해지고, 은행간 합병 논의는 예상보다 훨씬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달라진 은행 합병 시나리오=은행들이 예상하는 합병 시나리오도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일단 하나·한미은행의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후 주택은행과의 2단계 합병도 가능성이 높다. 주택은행은 하나·한미 대신 조흥은행과 대등합병을 할 여지도 있다. 문제는 최대 합병 주체인 국민은행의 ‘짝’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국민은행은 신한은행을 원하고 있으나 신한의 반대입장이 아직은 확고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이 신한·대신·외환은행과 손잡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민의 소매금융과 외환의 도매·국제금융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 kyk@fnnews.com 김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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