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라 터지는 국내외 악재로 우리 경제에 외환위기 악몽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국제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생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가, 그동안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반도체 가격마저 급락하면서 국제수지 관리에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우자동차의 매각까지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금융시장 역시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민들은 에너지에 대한 장기정책을 방치함으로써 ‘고유가’라는 연례행사를 호들갑스럽게 치르고 있는 정부의 무능을 탓하고 있다.고유가에 대한 선진국의 대처방안과 비교해 보면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타당해 보인다.선진국은 1,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산업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일찌감치 전환하였다.일본은 요즘같은 고유가시대에 오히려 전력요금을 인하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그것은 장기적으로 절약기술 개발 등 고유가에 대비한 꾸준한 투자로 고유가의 충격을 무리없이 흡수할 수 있는 산업구조로 재편해온 결과다.그리고 국제유가가 올랐을 때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시장의 가격신호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길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최근 부랴부랴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고유가 대처방안을 결정하였다.그러나 여기서 나온 대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차량 5부제 운행 등 에너지소비 억제 위주의 규제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해외자원개발 등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 제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정부대책안은 국제유가가 뛸 때마다 언급되었다 유가가 안정되면 흐지부지되었던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유가 상승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우리의 에너지 소비행태다.이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우선 에너지가격이 시장원리에 따라 신축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소비가 적시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두 번째로는 다른 에너지로 대체하기 어려운 석유 의존설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이는 낮은 석유가격이 장기간 유지됨으로써 대체설비에 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던데 원인이 있다.이러한 것들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시스템상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 에너지소비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구조적인 에너지문제 해결은 수요와 공급측면에서 모두 들여다보아야 한다.우선 수요측면에서는 우리의 고질적인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경제구조를 하루속히 개편해야 한다.가정과 기업·정부 모두 에너지절약 및 효율화에 대한 적극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특히 산업조직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구조로 되어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단기적으로는 가정·상업용 에너지를 보다 효율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산업구조로의 개편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에너지는 비싸고 귀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다만 에너지가 비싸지더라도 에너지에 대한 전체적인 지출은 크게 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에너지효율이 높은 상품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소비자 정보제공을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효율이 높은 자동차나 가전기기에 세제상 혜택을 주거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효율별로 상품을 분리 전시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에너지절약시설 교체에 큰 비용이 들어갈 경우에는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 있어야 한다.다만 지금까지 상당한 정책자금을 이미 투입했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을 상기하면, 자금운용을 보다 철저하게 관리·감독 및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공급측면에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지금까지의 수동적인 에너지 공급전략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의 변화가 요구된다.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개방형 에너지수급체계를 통해 에너지 공급안보를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한 화해무드는 동북아 구상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해주고 있다.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잘 이용한다면, 우리의 에너지 공급기반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음은 물론 세계 석유시장에서의 우리의 시장영향력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에너지경제硏 연구원 조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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