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원칙에 구멍이 뚫렸다. 현대생명에 대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방침이 대표적 케이스다. 지난해 2월 현대생명이 공식 출범한 이후 정몽구·몽헌·몽준·몽윤씨 등 현대측 형제 계열 대주주들은 5000억원에 이르는 부족자금을 1년이 넘도록 단 한푼도 책임지지 않은 채 부실전액을 국민 혈세로 메우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야기해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현대생명 공적자금 투입문제와 관련해선 정부와 현대측 모두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능력있는 대주주의 자구노력 외면=현대자동차측은 지난해말 진흥금고와 코미트금고가 어려울 때는 90억원이 넘는 돈을 선뜻 지원했다. 반면 자신이 대주주인 현대생명의 자본확충노력은 완전 외면,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이와관련,금융감독위원회도 몽구·몽준씨등 일부 형제계열 대주주들의 경우 증자여력이 있었음에도 현대생명 출범후 1년이 지나도록 부실을 그대로 방치해 급기야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기에 이른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의 경우 생보업 진출에 그토록 의욕을 보이다가 해당 계열사가 부실화된 뒤엔 무책임하게 회사를 버리는 부도덕성을 보임으로써 정부와 국민을 당혹케 하고 있다.
현대측에 속수무책 당한 정부도 공적자금낭비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금감위 관계자는 현대생명 대주주 부실책임부과와 관련,“현대측이 신규사업을 추진할 경우 증금채강제매입 등의 경제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현대가 신규사업에 진출하지 않게되면 공적자금 환수수단이 없다”며 난감해 하고 있다.
◇정부의 현대생명 처리 맹점=정부는 지난해 2월 현대 소속의 한국생명에 부실생보사인 조선생명을 합치는 조건으로 1166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준 바 있다. 그래서 출범한 것이 현대생명. 물론 현대측 대주주들이 자본확충에 나선다는 전제로 현대측에 생보업 진출을 허용했다. 그러나 지난 1년동안 현대측의 자본확충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위 관계자는 “현대생명 대주주중 현대자동차(현대캐피탈) 등은 자금여유가 있다고 판단, 증자에 나서줄 것을 줄곧 요구했으나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대주주들의 경우 자금여유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한푼의 자본확충도 끌어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 당한 것이다. 대주주중 일부라도 자본확충에 나섰더라면 현대생명 부족자본 전액을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떠넘기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금감위도 시인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가 진흥금고나 코미트금고에는 자금을 지원하고 현대생명자본확충만 외면한 것은 도덕적 해이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현대생명에 대한 공적자금 회수도 불투명=금감위 관계자는 “현대생명 대주주들에게 경제제재를 가하기 위해 모든 법적인 조치를 검토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계열이 신규사업 진출을 추진할 때만 투입금액의 3분의 1 수준에 해당하는 증금채 강제매입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다. 현대가 신규사업 진출만 하지 않는다면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현대캐피탈이 추진중인 카드사업진출 등은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 fncws@fnnews.com 최원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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