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명문 MIT 공대출신의 환경설계학박사, 지난 94년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지도자 100인’에 포함된 유일한 한국여성.
여류 건축가 김진애씨(48)에게 늘 따라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녀는 그 흔한 휴대폰도 잘 쓰지 않는다.그녀는 휴대폰을 발신전용으로만 사용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전화가 걸려와 간섭받기를 싫어한다.
여성건축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홀로서기에 성공한 파워우먼 김진애씨가 지난 90년 ㈜서울포럼을 설립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서울포럼 입구에는 ‘세가족 집’이라는 이색적인 문패가 걸려 있다.그녀가 직접 설계한 이 ‘세가족 집’은 그녀가 꿈꾸고 있는 ‘좋은 집’의 실험작품.
“좋은 집이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두루 담아낼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요.”
세가족 집은 그녀의 사무실과 자택, 시부모님 댁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지상3층 지하1층의 건물을 일컫는다. 이렇게 한집에 삶과 일터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 좋은 집일수밖에.
맨 위층은 그녀와 남편 그리고 두 딸이 함께 살고, 그 아래층은 차례로 시부모님과 시누이부부가 산다.1층과 지하층은 서울포럼 사무실로 쓰고 있다.역시 건축가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녀의 말투 또한 보통 사람보다 두배 이상 빠르고 거침없다.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말을 이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녀는 “타고난 성격 탓”이란다.
올해로 건축인생 30년.건축가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이화여고를 갓 입학했던 지난 68년 무렵.이때만 해도 건축에 대한 개념이 일반인들에겐 낯설었던 시절이다. 가뜩이나 여자몸으로 건축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은 꿈속의 일.
“고등학교때 제 적성이 공학쪽이라고 생각했어요.수학도 꽤 잘했구요.공간추리력은 놀라울 정도로 높게 나왔어요.제 특기를 살리려면 물리학자나 수학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이 분야는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지요.그래서 건축가의 길을 택했어요.지금 생각하면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싶어요.당시로서는 건축이 지금처럼 정치,경제,사회,지리,문화,역사가 다 합쳐지는 복합적인 분야라고 생각 못했지요.지나고 보니까 내 성격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런 점에서 전 행운아인 셈입니다.”
지난71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7년만의 여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입학했다.당시 800명 공대생중 홍일점이었다.지난75년 졸업직후 5년간 개인설계사무소에서 일했고 이 과정에서 79년 세라믹 전공의 엔지니어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지난8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MIT에서 82년에 석사, 8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88년 귀국해 주택공사 주택연구소 단지계획실장으로 일했다.정부가 분당,일산등 신도시를 건설할 당시 산본 신도시의 설계를 맡았다.그녀는 이때부터 ‘실력 있는 전문 건축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미국 시사 타임지는 21세기 지도자로 그녀를 대서특필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타임지기사로 유명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쪽 분야에선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타임지가 선정하게 된 거지요.”
유명세를 바탕으로 지난90년 회사를 나와 서울포럼을 차렸다.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서울포럼은 현재 12명정도가 일하는 조그만 회사였으나 건축설계부터 인테리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도시건축에 관련된 일을 맡아왔다.
“대기업이나 다른 큰 조직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독립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저 혼자서도 충분히 회사를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구요.”
그의 나이 서른일곱살 때의 일 이었다.
그녀는 주택건축 뿐 아니라 도시설계와 전시기획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특히 지난해에는 인사동 경복궁 길, 돈화문 쉼터 등을 디자인했다.
지난 96년에는 부산 수영정보단지 마스타플랜을 설계하기도 했으며 97년부터는 건축분야의 대표적인 웹진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포럼(www.archforum.com)을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포럼이 ‘떼돈’을 버는 기업은 아니었다.연평균 매출액은 5억∼12억원선.운영비와 직원월급 주면 그에게 돌아오는 연평균 액수는 최고 1억원.평균은 5000만∼6000만원에 불과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아주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데 보람과 긍지를 느끼지요.돈을 더 많이 벌겠다는 욕심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돈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지요.”
그는 “앞으로 사찰과 교통, 유통시설의 설계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며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김진애씨는 자전적 에세이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를 비롯해 이제까지 총 15권의 저서를 남길만큼 문필가로서의 활동도 왕성하다.그의 저서는 건축관련 서적이 대부분이지만 ‘여자, 우리는 쿨하다’ ‘남자, 당신은 흥미롭다’등 일반 에세이에 관련된 책도 출간했다.
앞으로 쉰 살이 되기 전까지 추리소설도 써 볼 생각이란다.그리고 죽기 전까지 100권의 책을 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이미 쓰고 싶은 책의 목록은 모두 정리해뒀다고 했다.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을 것 같은 그에게 삶의 굴절은 없었을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왜 없었겠어요. 다만 좌절을 견뎌내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죠.” 그녀는 일하는 여성프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일을 놀이로 할 수 있는 사람, 자기의 일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사람, 커뮤니케이션에도 능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포지셔닝(positioning)이 확실한 사람,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사람….” 그녀가 우선 꼽는 프로의 조건이다.
그녀는 여자 후배들과 자신의 딸에게 항상 조언하는 말이 있다.
“철저히 홀로 서라.즐겨라.인생에는 행복한 순간이 짧다.행복보다는 고난이 훨씬 더 길다.”
그녀는 시간관리도 철저하다. 새벽 4시 어김없이 일어나 5시에 사무실로 출근한다.직원들도 혀를 찰만큼 지독스레 부지런하다.
요리도 직접 하면서 가족들에게 서비스한다. 웬만한 옷은 직접 만들어서 입는다.만드는 거 하나엔 자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자로서 건축의 길만이 아닌 다른 길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영화감독을 했을 겁니다.아주 복잡하고 입체적이면서 난해한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 거예요.여러가지 기억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영화요.건축보다 훨씬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감독의 꿈은 지금도 꾸고 있다고 털어놨다.10년안에 영화작품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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