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 연휴는 유난히도 길다. 징검다리 연휴때문에 기업체에 따라서는 8일 동안 휴무하는 곳도 있다는 보도다. 사상 유례없는 3200만명에 달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휴가기간이 장기화한 것에 비하면 그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예년에 비해 오히려 훨씬 홀쭉해진 것이 현실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많은 기업들이 보너스를 아예 주지 않거나 줄이는 대신 휴무기간을 늘렸기 때문이다. 성과급에 설 보너스까지 지급한 대기업들도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일감부족으로 노는 날을 늘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설 경기의 양극화 현상은 재래시장과 백화점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 매상고가 품목에 따라 지난해보다 60%가 늘어나는 등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를 나타내고 있는데 비해 재래시장은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수백만원짜리 선물세트가 날개돋친 듯 팔려 즐거운 비명을 울리는 백화점에 비해 재래시장에서는 설이 맞느냐고 물을 지경이라고 한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현재 실업률이 4.1%로 8개월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는 통계는 올 설 연휴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올 1·4분기 중에 사원을 새로 채용할 계획이 있는 기업은 겨우 19%에 불과하고 67%가 ‘계획 없음’을 밝히고 있는 현실은 앞으로의 취업환경이 극도로 악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보다 적극적인 시책을 펴야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설 경기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된 것은 바로 중산층의 두께가 엷어진 결과에 다름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각종통계는 소득 불균형이 심화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음을 일러준다. 증권시장의 침체로 대부분의 가계에서 금융소득이 크게 감소하고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분배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니계수나 소득배율 등으로 보아도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득계층별 뿐만 아니라 지역별 산업별 학력별 격차 또한 심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가 이닐 수 없다.
소득격차가 가져오는 해악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함께 조세제도의 개선과 복지정책의 확충을 통해 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설경기의 양극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경제구조의 문제점이 그대로 노정된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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