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기업·금융구조조정으로 노사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어 언제나 긴장감 넘치는 노동부.
그러나 설을 쉬고 나온 탓인지 김호진 노동부 장관(61)은 다소 여유있는 모습이었다.말은 빠르고 때로는 거칠지만 교수출신의 ‘노동학’ 전문가다운 논리의 재치는 번뜩였다.
바람잘날 없던 취임 5개월.노동계의 아픔을 느끼고 현장을 아는 노동행정의 수장이자 노사 어느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감각을 가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일이 있으면 오히려 신바람 난다”는 워커홀릭의 김장관은 설연휴에도 과천 사무실에 나와 곧 마무리될 노동개혁등 현안을 챙겼다.
김 장관은 근로시간 단축문제 등 노동개혁 과제들에 대해 “너무 서두르지 말자”며 ‘순리’를 강조했다.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도 그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해 해결되는 사안이 아닌 만큼 2월이라는 시한을 완전히 못박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면서 “노사정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다소 신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장관은 실업정책과 관련,“공공근로에 치중했던 단기대책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방향을 근원적으로 틀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2월 기업·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면서 노사갈등은 첨예화되고 풀어야할 노동개혁과제는 산적해 올시즌 노사·실업문제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문제의 해법을 듣기위해 김장관을 fn초대석에서 만났다.
―2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있다.올 노동부의 핵심업무는 어디에 무게를 두고 있나.
▲가장 우선적인 업무는 실업대책이다.이제는 실업대책을 과거 공공근로등 단기대책에서 탈피해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로 방향을 바꾸었다.그리고 노사평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를 통해 실업률을 3%대로 안정시키는 한편 노동개혁과제도 완결지어야 한다.
―2월중에 근로시간 단축문제를 비롯한 노동개혁 과제를 풀어야하는등 시한이 가까워오고 있다.현재 추진상황은.
▲노동개혁은 다른 부문과 좀 다르다.정부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다.노사 당사자의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따라서 시한을 못박을 수는 없다.좀더 기다리자. 2월중에 현안들을 마무리하도록 박차를 가하겠지만 시한때문에 일방적인 결정을 내릴 순 없다.경우에 따라서 노동부문의 경우 2월을 넘길 수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문제의 경우 지난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미 합의문을 발표했는데도 아직 결론이 없다.노사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효율적인 조율이 있어야 되는건 아닌지.
▲현재 노사간 이견이 있는 세부 쟁점 사항은 휴가일수 조정과 시행시기 등에 관한 것이다.노동계는 휴가제도를 현행과 같이 유지하고 단축시간을 즉시 시행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상당한 유예기간을 둬 시행하자는 입장이다.정부는 근로시간제도 개선은 한국적 현실과 국제적 사례 등을 감안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다.이를 위해 1주일에 두세차례씩 노사정간 대화를 주선하고 있다.
―실업문제가 올해도 역시 뜨거운 관심사다.2월에는 실업자수가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올 실업문제를 어떻게 보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이후 실업률은 지난 99년 2월 8.6%까지 상승했지만 경기회복과 적극적인 실업대책으로 감소추세를 타고 있다.비록 최근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영향과 겨울철 건설일감의 부족,신규 졸업생들,그리고 전통산업의 퇴조 등으로 일시적인 실업증가 현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올해 실업대책의 ‘약발’이 먹히는 3월부터 96만명 내외수준에서 감소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확신한다.올해 연평균 실업률 목표인 3%대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실업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력의 수급상황이 고려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를 위한 복안은 무엇인가.
▲올해는 연평균 실업률 3%를 목표로 노동부뿐만 아니라 범정부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해 시행중이다.특히 1·4분기에 실업자 90만명대 수준을 실현한다는 목표로 총 2조906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 일자리 창출과 실업자 취업능력 제고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 2004년까지 51만명을 신규채용하고 올해 총 20만명의 실직자를 대상으로 IT분야 직업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장기 고용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중기고용정책기본계획을 3월까지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중기고용정책기본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현재 큰 방향만 정한 상태다.비정규직 근로자들과 고학력 실직자들 그리고 여성 인력을 최대한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고용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업예산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었다.실업정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은 없는가.
▲올해 실업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15%(5072억원) 정도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가장 많이 줄어든 분야가 공공근로사업 분야로 6707억원 감소됐다.그러나 실업예산에는 포함되지 않는 SOC투자가 지난해에 비해 5500억원 정도 늘었고 국민주택기금도 1조5000억원이 추가로 조성됐다.또 감소액중 실업급여 1372억, 고용안정지원 597억원은 실업자 감소 등에 따른 수요감소가 예상된 결과로 앞으로 실업자 수요가 증가할 경우에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추가 확보가 즉시 가능해 올해 실업대책을 추진하는 데 차질은 없을 것으로 본다.
―올해도 공기업을 포함한 기업의 구조조정이 예상된다.이과정에서 노사간 충돌도 적지 않을 전망인데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가.
▲우리 경제의 비효율적인 체제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조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구조조정이 우선 고통스럽더라도 기업경쟁력이 강화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고용창출이 가능할 것이다.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실직자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최대한 보호를 하겠지만 노동계가 무조건적인 구조조정 반대를 주장할 경우 최대한 설득작업을 벌여 나갈 계획이다.
―장관에 취임한지 5개월이 좀 지났다.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만족하는가.
▲그저 노력상 정도는 받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노사분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장을 누비는 소방수였다고나 할까(웃음).취임이후 육탄전이 벌어지는 현장을 누비며 뛰어다녔다.그러다 지난해 11월이후 계속 실업문제 때문에 밤에 잠을 못잔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내 스타일이 한가지를 생각하면 끝이 날 때까지 몰입하는 타입이라 더 그렇다.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장관은 교수출신인데 공무원생활과 교수생활중 어느 분야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나.
▲학계에서 익힌 학문을 정책을 통해 실천하는데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나는 일을 할 때 신바람난다.항상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현장에서 발로 뛰는 행정가도 적성에 맞는다.둘다 보람있고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이다.
―바쁜 생활속에서도 취미생활은 어떻게 하나.
▲장관이 되고 나서 이발소에 갈 시간도 없었다.목욕탕에 갈 때 거기서 머리를 깎을 정도였으니까.취미생활을 즐길 겨를이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는게 취미생활이랄까.
―앞으로 각별히 관심을 갖고 추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살리되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노동철학이자 소신이다.
/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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