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외경제 여건 악화와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3.18 05:56

수정 2014.11.07 15:29


최근 국내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수상의 변화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제조업 경기실사지수가 호전되고 있으며 2·4분기엔 더욱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서비스업의 성장률도 8개월만에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제 지수상 되살아나고 있는 소비·투자심리가 유지될 수 있다면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가능하다는 성급한 기대마저 나오고 있다.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국내의 변화와는 달리 지난 며칠간 나타난 대외적인 여건을 볼 때, 우리 경제 앞에는 아직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의 기업과 금융부실, 그리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해외 투자가들의 불신이 미국 금융시장을 불안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세계경제를 이끄는 두 기축경제를 뒤흔들고 있다.국내에 들어온 일본 자금이 40억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에 비록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당국의 설명에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 경제 불확실성 크다

일본의 금융위기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기업의 연쇄도산은 이어지게 될 것이고 아시아는 물론 세계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엄청나 우리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비록 일본발 금융위기설이 기우로 남는 경우라도 2차 대전이후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처했다는 사실을 처음 일본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늘 있을 미·일 수뇌회담에서 일본경제의 상황을 중요한 의제로 삼을 것이라는 발표를 볼 때 심각성과 급박함이 우리 경제 회복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특히 현재 일본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회생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던 재정정책이 파탄지경에 이른 상태로 인해 더 이상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일본경제는 더없이 심각한 처지에 있다.

31조엔이 넘는 부실채권을 갖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결산기인 3월의 1차 위기를 넘길 수 있다 하더라도 막대한 기업부실로 주식시장이 조속히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금융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일본경제가 이른 시일 내에 회복세로 돌아설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경제 역시 이미 하강국면으로 접어든 과정에서 월가의 금융시장이 커다란 불안을 보이고 있다.때문에 국내의 금융시장도 다시 어려움에 빠질지 모른다는 비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미국은 우리 경제의 회복을 짊어질 최대의 수출지역이다.미국 경기하락은 우리 수출품에 대한 수요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추진중에 있는 대규모의 감세정책이 경기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걸어보지만 일부의 기대처럼 과연 경기회복에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도 의문이다.특히 미국이 지난해 4354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적자를 보인 상태이기 때문에 한·미간 통상마찰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인 일본과 미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는 어려운데다가 엔화의 약세추이가 계속되는 것도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일본정부가 자국의 수출증대를 위해 엔화의 하락을 방관하고 미국이 이를 당분간 인정한다면 수출시장에서 일본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해져 수출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일본과 미국 두 거대 경제의 어려움으로 올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처럼 대외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다시 회생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일부에서 경기회복을 위해 경기부양정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그러나 어려운 재정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섣부른 경기진작을 위한 팽창적인 재정지출이나 감세정책은 별다른 경기부양의 효과도 없이 재정상태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 개혁 소홀하면 장기침체 우려

정작 필요한 시기에 사용할 재정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정책실패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지역개발을 통한 경기회복을 기대한다면 이도 역시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오늘의 경제문제는 일시적인 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낙후하고 비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경기회복의 근본적 계기를 마련하는 길은 금융시스템을 비롯한 경제시스템이 제자리를 잡아 원활히 작동시키는 노력을 지속하는데 있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은 오히려 진행중인 구조조정을 더디게 만들어 경제회복을 위해 그 동안 치른 많은 희생을 다시 허사로 만들 수 있다.당장은 힘들고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구조개혁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일본이 지난 10년간 장기침체를 겪은 근본적인 원인도 구조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웃 일본의 값비싼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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