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관리기업에만 칼 뽑은 채권은행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7.13 06:28

수정 2014.11.07 13:31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제에 따라 채권은행들은 1차로 퇴출대상 기업 18개사를 선정했다. 이미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에 이전·매각·청산이 결정된 3개사를 포함하더라도 25개사밖에 되지 않는다. 퇴출대상 18개사는 평가대상 1544개사의 1.16%, 평가가 끝난 897개사의 2%, 채권은행간 상호협의를 통해 처리방향이 결정된 102개사의 24.5%에 지나지 않으며 공교롭게도 법정관리(2개사), 화의(16개사) 기업뿐이다. 퇴출여부를 법원 결정에 맡긴 것이다.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제도의 첫 열매치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퇴출이 전무하다는 것은 채권은행들이 신용위험 상시평가제에 대해 얼마나 소극적인가를 말해 준다. 신용위험 상시평가제는 말 그대로 신용위험을 상시적으로 평가해서 퇴출여부를 결정함으로써 시장 기능의 왜곡을 바로잡자는 제도다.

그런데도 평가가 끝난 기업의 2%만이, 그리고 채권은행이 상호협의로 처리방행을 결정할 정도로 신용도가 낮아진 기업의 24.5%만이 퇴출대상이라면 시각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크게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시장의 ‘체감신용도’와는 격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기업대출 현황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23일 발표한 ‘1·4분기 가계신용 동향’을 보면 금융회사의 원화대출금 가운데 가계대출의 비중은 지난 3월말 현재 49.1%나 된다. 1년전의 40.6%, 지난 99년말의 39.9%에 비해 각각 8.5%포인트, 9.2%포인트 늘어났다. 그만큼 기업대출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금융기관이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을 선호할 정도로 기업신용이 낮아진 결과다.
그런데도 막상 신용위험도에 따라 퇴출대상을 선정하는 데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자가당착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결정이 정부가 지적한 덤핑으로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관리기업(화의·법정관리)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제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기업구조조정이 여전히 진행상황이라면 채권은행들은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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