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정유업계가 지난 1일부터 한 주유소에서 여러 브랜드의 석유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주유소 복수폴사인제’(상표표시제) 실시를 기점으로 치열한 가격경쟁과 고객서비스 경쟁에 나섰다.
정유사들은 이를 계기로 시장장악의 관건인 주유소 쟁탈전을 위해 휘발유 가격을 대폭 인하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선점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복수폴사인제 아직은 ‘헛바퀴’=지난 1일부터 복수폴사인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도입한 주유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주유소협회와 주요 정유사들에 따르면 전국 1만450여개 주유소들은 복수폴사인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및 수입사들의 주유소 공급 유류가 인하경쟁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 실제 2개사 이상의 유류제품을 취급하고 있는 곳은 아직 없다.
이에따라 소비자의 이익강화라는 취지로 마련된 복수폴사인제는 시행초반부터 업계의 혼선만 불러왔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이처럼 제도가 시행 초반 부진한 것은 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주유소들이 하나의 주유소에서 복수폴사인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각 제품별 저장탱크와 주유기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 만일 휘발유와 경유, 보일러 등유 등을 팔고 있는 주유소가 복수폴사인제로 전환하려면 별도의 저장탱크 6개가 필요하다는 것. 국내 주유소 중 이처럼 대규모의 설비를 마련할 여건이 되는 주유소는 10%에도 못미치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정유사 및 수입사들의 공급가 인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돼 공급사별 가격차가 뚜렷해지면 복수폴사인제를 시행하는 주유소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정유사로부터 빌려 쓴 시설자금 등을 완전 상환해 채권이나 담보가 없는 주유소가 전체 업소중 약 30%가량이어서 이들로부터 적당한 시점에 가장 경쟁력 있는 유종 한 두가지를 선택, 복수폴 사인을 달고 제품을 팔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파급효과=복수폴제도 시행으로 정유시장의 구도에도 변화가 일 전망이다. 당장 그동안 정유사에 밀리던 유통업자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유통망 확보가 바로 매출로 연결되는 정유업계 특성상 알짜 주유소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주유소간에도 격차가 더욱 심해져 영업실적이 나쁜 주유소는 오히려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공급자 가운데는 선두업체 보다는 에쓰오일과 석유 수입상 등 후발주자들에게 시장확대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된다. 소비자는 주유소의 판매제품이 늘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과 정유사간의 경쟁으로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주유소 관리가 엄격하게 유지되기 어려워 예상치 못한 피해도 우려된다.
◇가격전쟁 시작됐다=주유소 복수폴사인제 도입에 따라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 기름값 인하경쟁이다. 우선 그동안 1개월 단위로 조정되던 정유사의 주유소 유류 공급가격이 수시조정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주유소 유류공급가격은 그동안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유류의 공장도가는 해당 월의 국제원유가와 환율 등의 변화를 감안해 매월말 또는 해당 달 초에 발표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에쓰오일이 지난 3일부터 등�^경유의 경우 시장의 수급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시로 조정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 관례는 깨지게 됐다. 에쓰오일측은 그동안 시장에서 정상가와 덤핑가 이중으로 형성돼 있던 등�^경유 가격체제를 일원화하기 위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LG칼텍스정유도 지난 1일부터 휘발유 공장도 가격을 8월 수준에서 동결했다가 에쓰오일과 SK㈜등이 후에 ℓ당 각각 29, 49원씩 인하하자 5일 뒤늦게 결정을 번복, 29원을 따라 내렸다.
정유사 관계자는 “지금의 추세대로 간다면 그동안 월단위로 이뤄진 유종별 공장도가 조정이 시장여건에 따라 수시로 결정될 가능성이 짙다”며 “경쟁심화로 석유가격은 당분간 바닥권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석유사업법에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유류의 공장도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돼 있어 정유사가 아무때나 공장도가를 변경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정유사는 산업자원부의 협조요청에 따라 그동안 공장도가를 조정할 경우 24시간이내에 이를 산자부에 통보해 온 것이 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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