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가로수 뒤로 회색빛 전경들이 펼쳐진다. 지은지 족히 10년은 된 듯한 허름한 공장들이 주인을 잃은채 내팽겨쳐져 있는 곳과 시원스레 뚫린 도로를 바라보며 산뜻하고 말끔하게 단장된 곳, 첨단설비를 갖춘 곳이 3갈래로 나눠져 함께 공존한다. 한쪽이 재래시장이라면 다른 쪽은 백화점, 또다른 쪽은 전문상가인 격이다.
대구의 서쪽 낙동강변의 구릉 저습지, 시내에서 30분 남짓한 거리, 경북·구마·88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불과 1㎞가량 떨어진 사통발달의 요충지에 대구성서산업단지가 모습을 드러낸다.지난 84년부터 단지조성이 시작돼 88년 1단지가 완공됐고 92년 2단지 조성을 마쳤으며 지금은 3차단지 2지구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섬유업 위기 심각=먼저 1단지로 들어가 봤다.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단지가 만들어지면부터 조그만 공장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대부분 가내공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고만고만한 업체들이 태반이다. 공단조성이 본격화되면서 덩치는 커져갔지만 여전히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한 약골들이다.
1단지(82만4000평)가 완공된 88년만해도 호경기여서 물건이 없어 못팔 지경이었다. 제품을 만들기 무섭게 배로, 비행기로 날개돋힌 듯 실려나갔다.섬유업체가 주로 모여있는 이곳은 지금 IMF 외환위기 직격탄에다 중국의 물량·저가공세, 섬유경기 침체 등으로 파리만 날리고 있다.
1단지 조성 당시부터 입주해 있는 D섬유. 나일론과 폴리에스터제품을 생산, 전량 중국으로 수출해온 이 회사는 지금 가동을 중단한채 창고에 쌓아둔 재고처리에 고심하고 있다.회사 관계자는 “중국제품과 질은 비슷하고 가격은 비싸니 누가 사 가겠느냐”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공장을 돌리자니 인건비와 원료비만 들고, 기계를 멈추자니 언제 빚쟁이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곳이 한 두업체가 아니다.
기계·금속업체가 많이 입주한 2단지(121만6000평)도 사정은 크게 나아보이지가 않았다.그나마 섬유 보다는 타격을 덜 받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종업원 35명을 두고 산업용보일러와 소각로 등을 생산하는 S엔지니어링. 대기업의 하도급을 받아 제품을 공급하는 이 업체는 근근이 살림을 꾸려나가기에 급급한 상태로 10월부터는 주문이 없어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이 회사의 관계자는 “지난해 10억원짜리 공사를 수주했는데 그 업체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한푼도 못건져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성서단지 1,2,3단지에 입주해 있는 업체 1328곳 중 기계·금속업체과 섬유업체 수는 각각 638개와 454개. 이들 업체에 딸린 식구만도 성서단지 전체 근로자의 83%가량인 3만3000여명에 달한다.지난 2.4분기 동안만 조립금속업체는 15곳, 섬유업체는 무려 27곳이나 휴업이나 폐업, 부도를 맞았다. 1∼2곳씩만 문을 닫은 음식료과 목재·종이, 전기·전자, 비금속업체에 크게 비교된다.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 김진환 과장은 “대출한도에 이르러 금융권에서는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업체가 수두룩하다”며 “고품질·고부가가치 생산품목으로의 전환이 시급하지만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막막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첨단기업 전용단지 구축=성서단지가 이처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3단지를 첨단화하자’가 이 움직임의 시작이다.
성서단지 3단지(1만4000평)를 관리하고 있는 대구시는 삼성상용차 부지 맞은편 업무지원시설 부지 3만2000여평에 첨단기업유치전용단지를 만들어 경쟁력있는 첨단기업 유치에 나섰다.
지난해 5월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성서첨단단지에는 반도체제조장비를 생산하는 유니빅과 울텍, 엔코드 등을 생산하는 메트로닉스, LCD용 연마유리를 생산하는 신안SNP과 시엠티, HDD용 VCM을 생산하는 성림첨단산업 등 8개 첨단기업들이 속속 입주했고 4개 업체는 입주를 서두르고 있다.
올해 810억원,2003년까지 40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인 첨병들이 침체된 성서단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 eajc@fnnews.com 이재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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