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극적인 소비촉진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수출에 더 이상 기대를 걸 만한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수출은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조기회복이 불가능한 만큼 돌파구를 내수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소비,정부지출,설비투자 등 크게 세부문으로 이루어진 내수중에서도 특히 소비에 관심을 쏟는 것은 ▲경기전망상 설비투자진작을 기대할 수 없고 ▲정부소비 확대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방안은 이미 한껏 마련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과 투자가 활력을 잃은 마당에 소비까지 침체돼면 불황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왜 소비진작에 나서나=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경제가 안좋은 주된 요인은 수출부진”이라면서 “그간 대외적인 요인 탓으로 돌리고 적절한 대응수단을 찾지 못했으나 소비촉진외에는 수단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모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5%를 담당했던 수출은 올들어 8월말까지 전년 동기에 비해 9.1%가 감소했고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한 플러스로 반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 테러사태는 언발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투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고 있을 만큼 얼어붙어 있다.
진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세계경기로 보거나 현재 우리 산업의 과잉 설비로 보거나 추가적인 대형 설비투자를 기대할 시점이 아니다”면서 “그런 시점에서 소비마저 죽으면 경제의 활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진단하고 소비진작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대책있나=재경부 관계자는 “적정수준의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내수진작이 꼭 필요하다”면서 “정부는 주5일 근무 실시, 서비스업 활성화와 2차 추경편성 등 단계적이고 다각도의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말했다.
주5일 근무제는 노사정 합의없이 공공부문부터 실시한다는 정부 방침을 굳힌 상태다. 이 제도를 통해 근로자 복지를 제고하는 한편 스포츠나 레저 등의 관련 분야 산업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는 게 정부 속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의욕있게 추진하고 있는 게 서비스업 활성화다. 지난해 현재 서비스업 생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로 미국(77.3%),프랑스(62.9%)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아 역할을 높일 여지는 많다는 게 재경부 지적이다. 서비스업 활성화로 내수진작과 고용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산업자원부가 26일 내놓은 서비스업 중소기업 범위 확대도 제조업에 비해 차별적인 규제를 푼 것으로 볼 수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은 자본장비율이 낮아 같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부의 역효과=주식시장이 침체된 것도 소비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99년말 1028.07을 기록했던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말 504.62로 반토막났고 지난 25일에는 472.13까지 빠졌다. 주가가 하락함으로써 소비가 줄어드는 이른바 ‘부의 역효과’가 소비지출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할 게 뻔하다. 장기간 돈이 잠기는 부동산으로 돌릴 뿐 소비재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 인식변화가 관건=정부가 고소득층 소비와 서비스산업에 대한 소비자 인식변화 등을 통해 소비촉진을 노리고는 있지만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 것같지는 않다. 우선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기대지수는 8월중 98.2로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가 100이상이면 소비를 늘리겠다는 가구가 더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한번도 100을 넘지 못한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구매에 대한 기대지수는 8월중 93.3에 그치고 있어 향후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한편 정부는 최근 내부적으로 공무원들의 골프장,고급 음식점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린바 있지만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철회할 방침이다. 공무원들과 국영기업체 임직원들의 소비행태가 민간에도 영향을 주면 필요 이상의 수요감퇴가 있을 것을 우려해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분위기를 잡아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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