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fn경제교실-눈높이 경제]한국은행-美연방준비제도 비교

김종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10.03 06:51

수정 2014.11.07 12:31


최근 한국은행의 활동을 평가하는데 있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와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중앙은행의 활동은 중앙은행 법제, 금융·경제환경 등 정책수행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정책수행 여건까지 함께 고려하여 비교·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먼저 법제면을 비교해 보면 미국의 경우 행정부에는 연준이 결정한 정책을 번복하거나 연준의 예산 및 조직 운영에 대해 지시·감독하는 권한이 없다. 또한 연준은 통화정책 이외에도 금융감독, 지급결제제도의 운영 등 금융안정 기능 수행에 필요한 광범위한 업무를관장하고 있다. 연준은 설립 당시부터 은행감독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금융환경 변화에 맞추어 연준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정비하여 감독 대상을 금융지주회사 및 비은행 금융기관까지 넓히고 결제 시스템 및 민간 결제기구의 운영기준 제정권도 연준에 부여했다. 이에 비해 한은은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못하며 관장업무의 범위도 매우 협소하다. 행정부는 한은법에 의해 금통위 의결사항에 대한 재의 요구, 금통위 열석발언, 한은 예산승인, 감사원의 한은 감사 등을 통해 한은의 정책 및 조직운영에 개입할 수 있다. 또한 1998년에 개정된 한은법에서는 한은은 통화정책만 관장하도록 하고 금융감독·지급결제 시스템 감시 등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기능 수행에 필요한 업무는 매우 제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금융·경제 환경에 있어서도 연준과 한은은 크게 차이가 난다. 통화정책은 금융시장이 잘 발달되어 가격 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하는 상황에서 그 효과가 제대로 파급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금융시장 규모도 크고 회계 및 공시제도 등 하부구조도 잘 발달되어 있으며 금융상품 가격 결정에 행정부나 감독당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아 가격 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이 잘 발달되지 못하고 행정부나 감독당국에서 금융기관의 영업활동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가격 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미국은 행정부가 통화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함으로써 연준의 독자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여주고 있는 가운데 연준도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안정시킨 실적(track record)을 축적하고 있어 물가안정 주체로서의 연준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정부주도의 경제운용이 오래 지속되고 행정부가 통화정책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어 통화정책이 독자적으로 수행된다는 인식이 낮다. 또한 행정부가 행정지도 등을 통해 일부 물가와 공공요금을 관리하고 있고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안정 실적도 일천하여 물가안정 주체로서의 한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크지 않다.


우리는 연준이 이와 같은 정책수행 여건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시계에서 일관성 있는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고 이러한 통화정책이 1990년대 장기 호황의 초석이 되었다는 일반의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허재성 한국은행 조사국 선임조사역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