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뭐묻은 한국, 겨묻은 日 나무란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2.12 09:05

수정 2014.11.07 19:10


일본 TV 프로그램 가운데 ‘이것이 이상하다! 일본인’이라는 것이 있다. 재일 외국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을 비판하도록 한 프로다. 다소의 과장과 코믹성을 가미한 프로인데 제작의도는 내용을 보고 일본 스스로 자성하고 반성하자는 것에 있다고 한다.

영화 ‘하나비’의 감독이자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가 이상한 차림으로 사회를 보고 있으며 매우 선정적이다. 수영복 입은 들러리에다 어떤 여자 진행자는 아예 수영복 차림으로 사회를 본다.
한발 더 나아가 포르노 영화를 소개하면서 주요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해 음성과 화면을 내보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자극적인 눈요기거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이유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참으로 알 수 없다. 외국인이 자국을 그토록 통렬하게 비판하는데도 어느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시비를 거는 일이 없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한국을 그렇게 비판했다가는 당장 이 땅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외국인들로부터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게 진실이고 나쁜 말을 들으면 모른 척하거나 화를 내며 싸움을 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신문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문제에 대해 보도하자 대번에 항의를 한 것이라든지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내릴 것이라고 보도한 신문에 대해 보도자제요청을 서슴지 않고 한 모처(무디스가 2단계 강등시켰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금방 달아올라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 일부 네티즌이나 정치가들이 대표적인 ‘핏대’일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문화를 연구, 비평하고 있는 모리시타 아이코는 최근 기자에게 이 프로에 대한 자신의 ‘핏대’를 전달해 왔다. 그는 이 프로가 싫어서 잘 보지는 않지만 일본인 대표와 외국인들이 말같지도 않은 격론을 벌이는 일이 곧잘 있어서 재미삼아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 프로를 보고 히히덕대면서도 흥미의 대상이나 비판의 소재로만 삼는 한국인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최근 일부 한국 네티즌들이 이 프로를 공격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여자의 몸에 점수를 주고 등급을 매기고 상을 주는 미스일본대회나 미스유니버스 또는 미스월드 대회를 중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스코리아 열풍에 성형이 판을 치고 취업을 위해 성형외과를 문턱 닳으랴 드나들며 의대생들은 성형같은 돈 벌기 쉬운 분야로만 몰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에는 한국만큼 성형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그는 한국에서 ‘성의 천국 일본’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일본여자들을 비하하는 것은 ‘뭐 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고 했다. 과연 파는 누드를 사는 것과 여자들 여럿을 줄세워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중 어느 것이 더 여성비하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나무람이었다.

일본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낫다. 남편과 상의하여 아이에게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하는 일은 보기 힘든 사례도 아니다. 일본남성들은 모르는 여자에게는 지분거리지만 부인을 참 존중한다. 부인과 상의 없이 갑자기 친구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느닷없이 술상을 차리게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청구권은 황혼이혼이라는 현상이 가능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에는 권리가 없으나(이럴 땐 위자료를 청구) 결혼 후에 모은 재산은 부부의 공유이므로 재산을 반으로 분할해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법정 유산상속의 권리는 부인이 전재산의 절반을, 그리고 나머지 반을 자녀들에게 남녀나 혼인과 관계 없이 똑같이 나눈다.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은 당연히 어머니가 최우선이다. 한국이야말로 여성들에게 희생에 희생을 감수하게 만들어왔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아버지 모르는 아이는 사생아라며 멸시하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아파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싱글마더(Single Mother)와 싱글파더(Single Father)에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남아선호 사상과 잦은 여아낙태, 어머니 성을 따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이 남아 있다.
모리시타 아이코의 항의를 들으면서 필자는 보다 선진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국수주의를 벗어나며 자신의 눈높이가 아니라 타인의 눈저울에 맞추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 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jch@fnnews.com 주장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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