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절벽 앞에서 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4.22 09:25

수정 2014.11.07 17:56


동남대학 유니폼을 입고 있긴 했지만, 내막은 외인부대인 구웅철 축구팀의 예선 첫게임은 개막 다음날 오후 3시에 열린다. 상대팀은 백제대학이다. 지난해 대회 8강은 말할 것도 없고, 올 봄 첫 전국 무대인 Y신문 사장기 쟁탈 대회에서도 우승 후보를 꺾어 파란을 일으킨 팀이 바로 백제대학 축구부다.

막말로 어느 팀이 더 월등한가, 예상 전적을 비교 공개할 가치조차 없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대회 관계자고 동남을 아예 거론조차 마다할 지경이다.
하나마나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철이 놈은 어제부터,

“삼촌 축구장에 올 거지?”

하고 확인해 마지않던 바다.

“그럼.”

강선우도 거침이 없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대답은 그렇게 하고 또 바쁜 일 있다고 운동장에 안 나오면 안돼!”

“알았다니까.”

“구단주가 자리잡고 버텨 줘야 골이 들어간다구. 내 말 무슨 얘긴지 알겠지?”

녀석은 늘 그렇게 협박조다.

“구단주라니?”

“삼촌이 구단주 아냐! 출전비용을 댔으니까.”

웅철이 놈도 말을 머금고 머뭇거리는 성격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시원하게 뱉어 버린다. 아니, 녀석은 역시 머리가 좋다. 의도적으로 출전비용이니, 구단주니 해서 피차 쇠파이프에 대한 공포를 깡그리 지워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엄청난 상처와 공포가 까짓 너스레 따위로 어찌 간단히 지워질 수가 있겠는가. 설사 깡그리 뭉개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희석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웅철이 놈은,

“구단주 한번 젊어서 좋다.”

라고 낄낄 웃기까지 한다. 강선우 역시 녀석의 숨은 의도를 재빨리 간파했으므로, 더욱 경쾌한 목소리로 답한다.

“나도 그래, 1승도 못 올릴 팀에 비싼 후원금 냈다는 멍청한 구단주 소린 듣기 싫으니까.”

강선우가 다른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웅철이 놈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잇는다.

“한데, 백제대학팀이 우승 후보라는데, 한 골이라도 넣을 자신은 있냐?”

웅철이 놈이 대답한다.

“프랑스 2부 리그 최하위 팀 르아브르의 바뀐 구단주가 처음 겔랑스타티움에 나타났을 때, 세 골이나 연이어 터졌다는 기록도 몰라?”

“그런 기록도 있었나?”

“선수들에게 구단주는 돈줄이거든. 구단주에게 잘 보여야 보너스가 생기잖아? 그러니까 열심히 찬스를 만들 수밖에.”

녀석이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안그래? 라고 반문하여,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 다음, 의도적으로 큰 소리로 입을 연다.

“오늘, 우리가 이기면 얼마 내놓을 거야?”

“이기기만 한다면야… 그래, 좋아. 백제대학만 꺾어주면 선수들한테 승용차 한대씩 쏘지 뭐.”

“승용차를 쏜다구?”

“그렇다니까.”

“삼촌, 그거 정말이야?”

“동남그룹의 주력사업이 뭔데? 자동차 만드는 회사 아냐?”

말 인심이야 후할수록 좋다. 내친김에 강선우는 아예 약조를 해버린다.


“자동차 잔뜩 만들어서 뭐하니? 안 팔리고 있는 차 한대씩 돌려봐야, 그거 얼만데? 게다가 김판수 회장님도 귀국하시면… 없어진 축구팀의 외인부대가 막강한 우승 후보팀 백제대학을 실력으로 눌러 이겼다면, 회장님께서 그보다 기쁜 선물이 어딨냐구, 상 안 주시겠어? 아니, 회장님도 회장님이지만, 그 광고 효과는 또 얼마냐? 안 그러냐?”

얼렁뚱땅 가져다 붙이는 강선우의 언변에 웅철이뿐 아니라, 선수들 거의가 입을 아! 벌리고 닫을 줄을 모른다.

“삼촌, 혹시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핑계로 함부로 헛총 갈기는 거 아냐?”

웅철이 놈이 쐐기를 박는다.


“천만에… 넌 이길 방도나 생각해, 그 다음 일은 나한테 맡기고.”

“하긴… 삼촌이 실세 중의 실세니까.”

녀석이 이죽거려 마지않는다.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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