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절벽 앞에서 ②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4.23 09:25

수정 2014.11.07 17:55


“실세라니?”

강선우의 반문에 녀석은 총이라도 발사하듯 잽싸게 말한다.

“비서실장 영 순위잖아?”

또 그 소리다.

“시끄러워, 그 얘긴 그만!”

강선우가 고개를 절절 흔들어 보인다. 그래도 웅철이 놈은 천방지축이다. 녀석이 말한다.

“왜, 비서실장이 싫어?”

“야, 인마.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몇번 얘기해야 알아듣겠니?”

강선우가 주의를 주는데도 녀석은 막무가내다.

“왜? 김판수 회장님이 안 시켜 줄까봐 그래?”

어이가 없다. 녀석이 계속한다.


“회장님이 그렇게 나오면 내가 나설게. 내가 회장님과 단판지어서, 비서실장 자리에 앉게 해줄게… 아, 참!”

녀석이 깜박 잊었다는 듯이 손뼉까지 치며 말을 잇는다.

“비서실장 자리에 앉으려면, 부장 가지고는 안되잖아? 이사로 승진해야지. 그렇지, 삼촌?”

아무리 회사 사정을 모르는 철부지라고 해도 이건 너무 지나친 망언이다. 강선우가 하소연하듯 말한다.

“자식, 넌 삼촌을 데리고 놀아야 직성이 풀리냐?”

“내가 왜 삼촌을 데리고 놀아? 이 구웅철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삼촌이라구. 강선우 삼촌!”

“야, 감격해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눈물?”

“그래, 이놈아.”

“눈물… 좋지. 그럼, 실컷 한번 흘려 보라구. 솔직히 감격할 만하잖아? 김판수 회장이 누구야? 내가 맘만 바꿔 먹으면 당장 장인어른으로 만들 수 있어. 김판수 회장의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되면, 막말로 뭘 못하겠어? 안 그래?”

틀린 얘기는 아니다. 황당한 허풍도 아니다. 물론 똑같은 철부지들이긴 하지만, 김은희가 웅철이 놈에게 얼마나 안달복달했는가.

강선우는 몸을 고쳐 앉는다. 그동안 기회가 나지 않아 속을 태웠던 일이다. 실제로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그 일이다.

“그래, 너 말 잘 나왔다. 김은희한테는 어떻게 하고 있냐?”

“김은희 얘기는 권대리한테 들었다며?”

“권대리?”

“우리 축구부 행정 대리, 권충길 형 말이야.”

“그래, 맞아. 대충 듣긴 했다만….”

“그대로야. 조국환 부회장이 깡패들을 보내 날 협박했지만… 나도 생각이 있어서 관망중이거든. 그래서 일단 축구시합부터 이기고 볼 참이야.”

녀석이 주먹을 쥐고 탁상을 두들긴다.

“잘 생각했다.”

강선우가 숨을 죽이고 얘기를 듣고 있는 축구부원들을 휘 훑은 다음, 말을 잇는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치우고, 우리 그만 일어나자구.”

“삼촌 먼저 일어서. 우린 좀 쉴 거야. 한 30분쯤 쉬다가 나가면 1시까지 도착할 거고, 시드 받아서 1시간쯤 몸을 풀었다가… 한데, 삼촌.”

“왜그래?”

“회장님은 언제 귀국하는 거야?”

“글쎄. 상황으로 봐서는 내일 모레쯤 오셔야 겠지만….”

바로 그때 강선우의 휴대폰이 울린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김판수인가 긴장하며 뚜껑을 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석민이다.


“선배님이세요?”

“오, 그래. 웬일이야?”

솔직히 주석민의 전화가 이처럼 반가운 적도 없다.

“선배님, 사장님께서 급하게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나를?”

“예, 선배님.”

“어젯밤에도 통화를 했었는데, 그런 말씀 없었어.”

“이제 방금 상황이 생겼으니까요.”

“상황이라니?”

“조부회장님이 기어코 사퇴 성명을 발표했거든요.”

“사퇴 성명?… 그거, 어제도 발표했잖아?”

강선우가 뭐 그리 대수롭느냐는 듯 예사로 반응한다.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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