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절벽 앞에서 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12 09:30

수정 2014.11.07 17:42


“그래, 꼭 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야… 그게 너의 의무라면 의무니까. 하지만 잠깐 기다려줘야겠다. 우선 용식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 같아서 말이야. 괜찮지?”

강선우가 일방적으로 용식이를 본다.

“넌 어떻게 할래? 네 얼굴을 아는 사람이 플래시를 켜서 널 확인했다니… 물론 그날 그 현장에 간 일이 없다고 용식이 네가 천부당만부당 잡아떼야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형부터 만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형이 널 도와줘야 알리바이도 만들 수 있고 성난 노조원들을 컨트롤할 수 있지 않겠니?”

용식이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연다.

“하지만… 우리 형은 생각보다 고지식하거든요. 형은 없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줄 사람이 아녀요. 어쩌면 형사들보다 형이 먼저 날 의심할지 몰라요. 모르긴 해도 그래서 노조 선전부장이 되지 않았나싶거든요.”

용식이는 또박또박 할 말을 다 한다. 여간 침착한 게 아니다.


“그래? 그거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그렇긴 해도… 형은 형이니까, 우선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조심 처리해야겠다, 야.”

“삼촌!”

웅철이 놈이 또 갑자기 끼어든다.

“왜 그래?”

“이스탄불 말이야, 용식이도 데리구 가면 안돼?”

“용식이를?”

“왜, 안되겠어?”

“안된다기보다….”

“만약 용식이를 안 데려가면 나도 갈 생각이 없어.”

딱 소리나게 잘라버린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강선우가 녀석을 노려본다.

“용식이랑 같이 안가면, 나도 보이콧한다고 했어.”

“야, 인마.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건 네 일이고, 네 의무란 말이야!”

강선우가 소리를 높이자 녀석도 똑같이 높인 목소리로,

“솔직히 나 이스탄불까지 도망가고 싶지 않아! 내가 왜 도망가냐구? 안 그래?”

하고 도리어 강선우를 윽박지른다. 녀석이 계속한다.

“삼촌 입장이 난처하다면 내가 직접 김판수 회장을 만나겠어. 만나서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어.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당당히 요구조건을 제시할 거야.”

“아서!”

강선우가 고개를 저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다음, 말을 잇는다.

“김판수 회장이 널 만나줄 것 같니?”

또 한번 절래절래 흔들고 나서,

“지금 회장은 석달 전 회장이 아냐, 내가 장담하지만 절대로 널 만나려 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내 말 알겠니?”

라고 아예 탕탕 소리나게 못박아 버린다. 그래도 웅철이 놈은 쉽게 수긍할 태도가 아니다. 수긍은커녕, 반대의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어 보인다. 녀석이 말한다.


“삼촌, 나 오늘 시합 끝나고 누굴 만나기로 약속한 줄 알아? 김은희야. 김은희가 모처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구. 삼촌이 알다시피 김은희는 절대로 나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그 자식, 아마 이 구웅철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을 걸. 뭐든지.”

강선우는 잠실대교를 건너 반대 방향으로 역회전한다. 이제 팔당 쪽이 아니라, 김포 비행장 쪽이다.


웅철이 놈이 계속한다.

“삼촌이 결정해. 날 떼어놓든지, 아니면 용식이랑 우리 셋이 이스탄불에 가든지.”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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