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홍제 회장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 모습은 어땠을까. 그의 청장년 시절로 돌아가 그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을 살펴보자.
우선 조회장은 시골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결혼(16세)한 이후 신학문을 배우겠다며 단신으로 상경, 2년여만에 초등과를 마치고 18세에 중앙고보에 입학한 만학파였다. 특히 중앙고보 3학년 때(1926년)는 6·10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이듬해에는 동맹휴학을 주동, 퇴학처분을 받았다.
또 그는 29세에 일본 법정대학(경제학부)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융조합(지금의 농협 금융부문)의 ‘수장’을 지냈다. 그리고 3번의 연임을 거치면서 농민들의 편에 서서 자작농 육성에 전력을 다했다.
이후 그는 일제가 면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듭해왔으나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싫어 끝내 거절했다. 당연히 보복조치가 뒤따랐고 요시찰인이 됐다. 이때 그의 머리 속에 사업을 시작하면 그들이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회장은 경영난에 허덕이던 군북산업조합을 인수했다. 그리고 기존 도정업 이외에 비료·가마니·새끼줄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수완을 발휘하며 1년이 채 못되는 동안 정상궤도에 올려 놓았다.
조회장은 자서전에서 “당시의 경험을 통해 시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와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배웠다”면서 “이는 훗날 회사를 경영하는 데도 큰 보탬이 됐다”고 소회했다.
/ blue73@fnnews.com 윤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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