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 건강한 인생] “우리는 ‘건강지킴이’ 8인의 실버밴드”

조남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1.23 10:24

수정 2014.11.07 12:17


‘평균 연령 73세, 폐활량은 40세.’

키보드의 구성진 멜로디는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어갔다. 다음엔 트럼펫이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독주로 화답했으며 웅장한 카르멘 서곡까지 장장 두시간여 동안 8명의 연주자들은 한 점의 흔들림 없이 정열적인 선율을 들려줬다.

이 연주자들은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에서 주최하는 ‘폐의 날’ 홍보대사로 선임된 ‘8인의 실버밴드’다. 평균 연령 73세의 노인들이란 사실을 모르고 연주만 들었다면, 30대라고 해도 그냥 믿을 법하다. 게다가 젊은 연주자에게 느낄 수 없었던 원숙미가 아마추어밴드의 실력을 훌쩍 뛰어 넘는 것 같았다.

당초 기자는 학회측에서 홍보대사로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아닌 무명의 노인 밴드를 정한 것이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이들의 폐활량 측정결과 평균 40대의 폐활량으로 나왔다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실버밴드가 결성된 것은 지난 2001년 봄으로 일산 노인복지관의 요청을 받은 최창균 단장(78세)이 왕년 해군 군악대 시절, 함께 활동했던 단원을 모으면서 부터다.
평소 최단장과 연락을 이어왔던 후배 등을 모아 밴드를 시작했다.

“처음 창단했을 때엔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치아가 다 흔들릴 지경이었다니까.”

트럼펫 연주자 박정근(77세) 할아버지의 회고다. 하지만 박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하는데 멤버 모두 늦는 법이 없는데다 드럼을 맡은 조병진 할머니(64세)는 경기도 양평에서 오는데도 활기가 넘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전자기타, 섹스폰, 트럼펫, 키보드, 드럼까지 젊은 사람들이 다루기도 힘든 악기를 연주하면서 창단 5개월만에 ‘노인여가활동 경연대회 대상’까지 받은 실버밴드의 건강비결은 뭘까.

가장 불기 까다롭고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박 할아버지의 건강비결이 문득 궁금해졌다.

박 할아버지는 “술과 담배는 항상 멀리한다”며 “해군 군악대에 있을 때는 공연이 끝난 다음에 가끔 막걸리를 마시곤 했지만 몸에 받지 않아서 술을 피하게 됐지”라며 웃었다.

술과 담배를 피하는 것만으로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40대의 폐활량을 가진다는 것이 의아해 기자는 다른 운동을 병행하는지, 특이한 식이요법을 하는지를 물었다.

“트럼펫은 배로 불어야 해. 가슴으로 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2∼3년후면 폐가 망가져 더 이상 연주생활을 못하거든. 트럼펫을 분다는 건 말이지, 요즘 말하는 복식호흡이랑 비슷한 거야” 박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트럼펫은 악기 특성상 하루에 2시간 정도는 따로 연습을 해야 제대로 불 수 있단다. 그러니 박 할아버지는 매일 복식호흡을 꾸준히 하는 셈이다. 또 등산을 즐기고 고기는 가급적 기름기가 적은 부위만 가끔 즐기는 것도 건강에 한몫했다.

박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미군클럽에서 활동할 때, 힘이 부쳐서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었지만 다리에 정맥이 불거져 나오는 하지정맥류가 생겨 치료 받은 다음부터 기름기를 피하게 됐다고 했다.

이밖에 초등학교 때엔 빙상선수로, 중학교 때는 기계체조와 철봉운동 등으로 다져둔 건강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박 할아버지는 덧붙였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왠지 신경이 날카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기자는 박 할아버지에게 연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최근 만병의 근원이자 산화를 촉진시켜 노화속도를 부추긴다고 알려진 스트레스의 정도를 알아보고자 했다.

즉 음악활동을 하면서 건강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혹시 음악활동이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건강을 해치게되는 건 아닐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박 할아버지는 “특히 트럼펫을 연주한다는 것은 신경이 곤두서는 작업이지. 하지만 되도록 예민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라고 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연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박 할아버지는 “이렇게 모여서 연습할 공간(노인복지관)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연주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기자의 눈에도 할아버지의 얼굴은 마치 40대의 건강한 얼굴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학축제에 초대받고 싶어. 보란듯이 젊은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라고 답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유독 다가오는 인터뷰였다.

/ kioskny@fnnews.com 조남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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