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동북아 금융허브와 전략산업 /박해식 금융연구원 국제금융팀장

이연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12.10 10:29

수정 2014.11.07 11:55


특정 국가가 런던, 뉴욕 등과 같은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연발생적인 요건과 인위적인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만 한다. 여기서 자연발생적인 요건이란 해당국가 및 해당 국가 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금조달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에 비해, 인위적인 요건은 선진화된 금융하부구조의 구축, 국내 금융시장의 질적·양적 발전, 규제완화 등을 포함하며 제도개선을 충분히 달성 가능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현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자연발생적인 요건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금융허브를 추진하는데 있어 런던, 뉴욕과 같은 국제금융센터를 목표로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비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위적인 요건은 과감한 제도개선을 통해 충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지역금융센터가 우리나라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역금융센터의 성공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아나간다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아시아지역을 대표하는 국제금융센터로서 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콩,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등 기존의 지역금융센터를 살펴보면 금융기관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금융시장의 추가 개방, 네거티브 리스트 법률체계로의 전환, 금융감독기능의 개선,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생활여건 및 기업환경의 개선 등은 우리나라가 금융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지역금융센터가 특정부문에 특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전략산업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전략산업은 동북아지역 및 국내의 금융수요와 성장가능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미개척 분야를 선점함으로써 기득권층으로서의 혜택을 장기간 누릴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산운용업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고령화사회가 진척되고 저금리기조가 정착되어 가면서 장기연금저축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며,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동북아지역의 구조조정 시장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국민연금, 외환보유고 등의 정부보유자산을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도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산운용업과 더불어 역내 청산결제기구의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전략산업이 될 수 있다. 국제간 증권거래의 확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등에 힘입어 국제적인 증권시장간 연계 및 통합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주 및 유럽을 중심으로 지역별로 단일 청산결제기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2003년 6월 영국의 청산기관인 LCH(London Clearing House)와 유로넥스트(Euronext)의 청산기관인 클리어넷(Clearnet)의 합병을 계기로 유럽 단일 청산결제기구의 출현 가능성이 크게 증대되었다.

아시아지역의 경우 역내 증권거래소간 연계 및 통합 움직임이 여타 지역에 비해 부진하기 때문에 역내 청산결제기구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 통화통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역내 채권시장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어 앞으로 역내 청산결제기구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홍콩이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국 결제시스템의 선진화 및 타국 결제시스템과의 연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청산결제기구의 설립은 아직은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 나간다면 선점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동북아 금융허브와 관련된 주변국과의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가 역내 청산결제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내 증권거래소에 참여하는 해외 회원사의 수가 증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역내 증권거래소와의 연계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격제회원제도의 도입, 교차상장 및 교차거래의 허용 등은 이러한 차원에서 적극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달러화, 유로화 등 타국 통화 결제시스템의 도입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해외 결제시스템과의 연결을 확대해 나가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타국 통화 결제시스템의 도입은 아시아지역에 투자하는 역외 투자자들의 시간대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제위험을 줄이고 투자자들의 편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아직도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금융허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내 금융산업이 자연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이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존전략 차원에서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에 대한 보다 많은 노력이 모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국제금융팀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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