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계미년 우리 경제는 참여정부의 출범이란 훈풍을 안고 힘차게 출발했다. 청사진은 화려했다. 안정적 성장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안정과 구조개혁을 이뤄내겠다는 게 올해 경제운용의 목표였다.
중장기적으로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국가균형발전과 참여복지를 구현하겠다는 애드벌룬까지 제시됐다. 경제주체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연초부터 SK사태, 북핵위기, 이라크전, 노사분규, 제조업 해외 이전, 소비심리 냉각, 신용 대란 등 나라 안팎으로 터진 각종 돌발악재 속에 경기는 최악의 침체에서 허덕였고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 서민들에게 고통과 좌절만 안겨줬다.
파이낸셜뉴스는 다사다난이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사건이 많았던 올해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원인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참여정부 첫 경제팀의 올 한해 동안의 거시경제운용에 대한 평가는 참혹하게 꺾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서 드러나듯 ‘실패’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고 있다.
‘호언했던’ 5% 중반대 성장은 2%포인트 이상 간극이 발생한 2%대 후반(한은 2.9%·한국개발연구원(KDI) 2.7% 각각 추정)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제팀이 떠안아야 할 책임은 아니라는 ‘옹호론’도 제기된다. 즉 ‘국민의 정부’가 남긴 ‘경기부양의 버거운 유산(遺産)’인 가계부채와 신용불량, 부동산 투기 등에 치여 ‘우왕좌왕’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제팀 입장에서도 “정말 운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악재가 잇따랐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22일 “사스, 북핵, 이라크 전쟁에 따른 고유가, 태풍 ‘매미’, 파업사태 등 예기치 못했던 대내외 변수들이 너무 많이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요인들이 성장률을 2.5%포인트가량 깎아내렸다는 게 재경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책 ‘실기(失機)’에 대한 책임은 비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대내외 충격을 핑계로 경제개혁이라는 정책목표와 경제안정에 굉장히 중요한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훼손된 점은 반드시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팀은 연초 ‘2003년 경제운용계획’에서 내수와 수출에 균형을 맞춘 안정적 경제성장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내수는 수출에 어깨를 맞추기는커녕, 도·소매판매 8개월 연속 감소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경기부진의 최대 원인이 됐다.
기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 투자활성화를 유도하겠다던 방침도 물거품이 됐고 고용문제 역시 청년층의 구조적 실업해소에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악의 청년실업사태가 벌어졌다.
신용불량자는 360만명에 육박해 400만명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분석까지 나와 정부가 ‘신불자’란 부정적인 명칭을 바꾸는 제도개선에 착수한 상태다. 가구당 빚은 9월말 현재 3092만원(472조6000원)으로 ‘빚수렁’에 빠져 있다.
아울러 금융시장 불안의 ‘핵폭탄’인 카드부실, LG카드 부도위기로 이어졌고 부동산 투기대책도 사후약방문식 대증요법만 제시하다 투기광풍만 부추긴 후에야 ‘10·29 종합대책’을 떼밀리듯 내놓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부는 2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짜고 예산 조기집행 등으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마추어적 조정능력’이란 혹평 속에 환율안정과 법인세 인하 등을 이끌어 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처지에서 ‘외끌이’ 동력 구실을 한 수출마저 없었다면 한국경제는 벼랑 끝에서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선임연구위원은 “내년 경기회복론의 토대는 수출호조이나 수출증가가 내수진작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내수부진의 장기화에 대비,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고 추가 금리인하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센터장은 “가계신용문제가 완화돼야 내수도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 lmj@fnnews.com 이민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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