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240억원에 매출액 1조원, 순이익 1000억원.’
이런 초우량 기업이 한국에 있다면 아마 놀랄 것이다. 그럼 자본금 1억5000만원에 매출액 2360억원, 순이익 480억원인 회사는 어떤가.
전자는 한국IBM의 2002년 실적이고 후자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MS)의 지난 2001년 결산실적이다. 한국에 투자한 자금에 비해 얻는 수익금은 실로 엄청나다. 이 수익금들은 한국에 재투자되거나 유보되지 않고 몽땅 매년 배당금으로 미국 본사에 송금된다.
한국IBM이나 한국MS나 워낙 독점적?^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업들이다 보니 이들은 영업도 배두드려가며 한다. 이 회사들의 제품을 팔겠다는 한국기업은 줄을 서 있다. MS의 경우 아예 직접 나서지 않고 대신 한국기업들이 전면에 나서는 채널(판매대행사) 영업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운좋게 판매대행사나 파트너로 뽑히면 그 사실만으로 당장 주가가 오를 정도로 시장에서도 알아준다. 모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 임원은 이들 회사의 수월한 영업을 두고 ‘귀족영업’이라며 부러워했다.
한국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기업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부정영업으로 관련자가 구속됐다거나 세금을 탈루했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아연케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IBM은 공공기관 뇌물납품비리가 적발돼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MS는 지난 2002년 물품대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320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것이 적발돼 지난해 전액 추징당하는 창피를 당했다.
한국IBM은 “기소된 몇몇 개인이 한국IBM의 엄격한 업무지침과 윤리기준을 위반했다”는 회사입장을 밝히는 등 내심 많이 억울해하는 눈치다. 아마 ‘미꾸라지 몇몇 때문에 IBM의 높은 도덕성이 매도당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IBM에 몸담았던 모 인사는 한국IBM의 납품비리 사건 소식에 “머리털을 뽑았다가도 그 자리에 도로 갖다 꽂는 회사인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모 국내 IT업체 대표는 기자에게 “A사의 뇌물거래는 일상적인 일로 표면적으론 국내 판매대행업체가 한 것처럼 돼 있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A사와 십수년간 거래해 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그들은 뇌물을 결코 직접 주지도 않거니와 뇌물을 주라는 지시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 판매대행업체와의 사이에 암묵적으로 뇌물제공에 대한 룰이 정해져 있어 대행업체가 뇌물을 제공하면 그 금액만큼 대행업체에 공급하는 제품가격을 깎아준다.”
이번 한국IBM의 뇌물사건도 겉으론 무관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살짝 들춰 보면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다.
최근 이들 기업은 본사 통제가 부쩍 강화되면서 더욱 얼어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IBM은 이제 한국인이 미덥지 못한지 아예 노랑머리 미국인이 사장으로 부임할 것이란 소식이다.
한국MS도 고현진 전 사장이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데 충격을 받아 한국지사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뇌물납품 관행은 아마 앞으로도 고쳐지기 어려울 것이다. 더러운 물에서 노는 고기가 깨끗해질 수 있겠는가.
/ lim648@fnnews.com 임정효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