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change up 코리아-님비·핌피현상] 집단이기주의 나라 망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1.12 10:37

수정 2014.11.07 22:18


태양광 발전 전문기업인 대구솔라에너지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중이다. 올해 5월 완공 예정이던 이 공사는 최근 위기를 맞았다. 태양광은 기존 원자력이나 석유 등 화석원료를 대체할 무공해 에너지원이지만 지난해부터 인근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 건설로 인한 ‘땅값 하락’과 ‘전자파 발생’ 등을 이유로 사업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정율 82%를 보였던 이 공사는 현재 중단됐다.

충북 제천시는 인구 14만명의 제천시에서 발생하는 1일 50t의 생활쓰레기를 소각 매립할 종합처리장 건설이 숙원사업이다.
주민 반대로 소각시설 건립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들이 많은지라 제천시는 ‘발전기금 30억원 지원’ ‘숙원사업 우선 해결’ 등의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 이 결과 예상밖의 일이 벌어졌다. 시가 공고한 생활쓰레기 종합처리장 유치 신청에 봉양읍 공전1리,신동 동막골 등 관내 6개 마을이 경쟁을 벌인 것이다.

위 두 사례는 소위 혐오시설 유치를 둘러싸고 보여준 우리 사회의 상반된 대응 모습이다. 태양광발전소 건은 실제로는 혐오시설이 아닌데 발전소라는 사실로 님비에 희생된 사례이다. 제천 쓰레기소각장은 일반 시각으로는 분명 혐오시설인데도 오히려 유치신청이 이어진 사례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대부분의 사례는 전자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지역이기주의는 이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경제성과 장래성을 숙고한 뒤 추진돼야 하는 각종 도로,항만,철도,공항 등 국가 기간시설들은 ‘우리도 빠질순 없다’는 지역 민심으로 인해 설계변경이 이어지고 있다. ‘필요하기야 하지만 내집 앞에는 절대 안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는 국토 곳곳에서 ‘공사 강행’과 ‘절대 불가’의 논리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회가 각자 이익만을 추구하는 전쟁터가 됐다.

이러한 시민들의 이기심을 부채질하고 이용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경부고속철도의 중간역이 늘어나 결국 ‘경부저속철’이 되어가는 것은 정부 정책의 방향과 국가적 효율성은 뒷전인채 오직 역사 신설을 공약으로 삼아 지지표를 늘리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얄팍함이 원인이었다.이 들의 ‘표(票) 우선’ 논리는 행정당국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건설교통부는 국회의원들의 로비에 시달리다 못해 지난해 10월 경남 울산,경북 김천,충북 오송 등에 중간역 신설을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울산에 고속철 역사가 들어서는 것은 당연하다’는 발언도 한몫했다.

지방 공항은 모두 16개나 된다. 하지만 16개 지방공항 중 김해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공항은 지난 98년 이후 계속 적자로 적자 규모가 무려 2500억원에 달한다. 도로,철도,항만,항공 등 종합적 교통계획을 무시한 채 ‘어느 지역에는 있는데 왜 우리 고장에는 없느냐”는 지역 이기주의와 이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 논리가 어울어져 빈털털이 공항을 양산했다.

김해시민운동연합 나종배 간사는 “지역에서 민원이 발생하면 사안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무조건 ‘해결하겠다’며 인기 발언만 쏟아내는 정치인이 많다”며 “이들이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역이기주의는 관(官)과 관(官)끼리도 표출된다. 전남 광주직할시와 나주시는 지난해 말부터 여수세계박람회,경륜장 유치에 이어 최근 광주?^전남 정부합동청사 건립 을 놓고 맞붙고 있다. 광주지방국세청 등 10개 행정기관이 입주할 광주?^전남 정부합동청사는 당초 나주시가 시내 남평읍에 유치하려고 했다. 행정자치부가 올해 예산에 설계비로 17억원을 반영까지 한 상태다. 하지만 광주시의 반발로 나주 유치가 무산됐다. 최근에는 나주시민들이 광주시의 현안사업인 광역위생매립장 조성사업을 무산시키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의 실적주의와 지역이기주의의 합작품인 셈이다.

이밖에도 행정자치부의 재산세 개편안에 서초구청을 비롯해 송파구청,양천구청 등 강남권 기초 자치단체들이 전면 거부 움직임을 보였다. 사스 전담병원 지정까지 무산 됐다. 위도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새만금 간척사업과 국론 분열 등 지난해 이 사회에서 표출된 지역이기주의의 사례가 즐비하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배제대학교 사회학과 박충일 교수는 “80년대 후반 이후 민주주의 정착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자유롭게 추구하게 됐고 이것이 집단 이익 추구로 공론화됐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학습과정이 짧았기 �c문에 우리 사회에서의 이익추구는 항상 ‘사생결단의 투쟁’ 아니면 ‘모 아니면 도’라는 편협된 이기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상반된 주장과 권리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국가의 리더십이다. 대부분 사안에서 국가는 처음 추진과정에서부터 여론 수렴 및 이해관계 조정 노력을 게을리했다. 부안이 그랬고 새만금,경인운하가 그랬다.

‘지역 경제의 원동력’으로 대접 받았던 기업 공장들이 최근에는 부동산 열기로 인해 ‘아파트값 하락의 주범’으로 몰려 지방 이전 요구를 받고 있다. 정부마저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겠다며 수도권 공장 신·증설은 막고 공장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핵폐기물처리장이나 쓰레기처리장 설치 반대같은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나 이라크 파병 등 정치적,이념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해 관계의 충돌이 나라 전체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할만큼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으며 국가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쓰레기소각장 설치 반대 사실보다는 이를 둘러싼 ‘나만이 옳다’는 생각,확 달아올랐다 ‘언제 그랬냐’며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일단 밀어붙이고 보자는 구시대적 사고가 문제”라며 “지금 이 사회는 위정자의 강력한 리더십을 전제로 한 사회통합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사회문제연구소 이충남 소장 역시 “내 이익만 주장하고 타인,그리고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주의 표출은 사회발전과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니즈(needs)가 적절하게 조화될 수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jerry@fnnews.com 김종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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