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나 되는 연휴가 슬슬 지겨워질 때쯤 극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설 극장가는 관객 500만명 이상을 불러들이며 흥행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영화 ‘실미도’가 300개 이상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고, 55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도 아직 상영중이다.
이 영화들을 본 관객이라면 설 연휴를 맞아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에 눈독을 들여도 좋다. 연휴 전 주말인 16일에 한국영화로는 ‘말죽거리 잔혹사’, ‘빙우’, ‘내 사랑 싸가지’가 선보이고 ‘피터팬’과 ‘브라더 베어’가 새로 극장에 걸린다. 설 연휴 전날인 20일에는, ‘페이첵’ 이 개봉한다.
◇한국영화의 세 가지 로맨스=설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세 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말죽거리 잔혹사’다. 실미도를 제치고 영화 예매 순위 1위로 올라섰다. 78년 말죽거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시인 감독 유하의 ‘지나간 청춘에 대한 송가’다. 강남 개발 붐을 타고 정문고에 전학 온 현수. 그는 전학 온 첫 날, 버스 안에서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은주(한가인)에게 첫 눈에 반한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남학생들에게 둘러쌓여 놀림을 당하는 은주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지만 소심한 그 대신 친구이자 정문고짱인 우식(이정진)이 싸우게 된다. 현수는 은주의 마음을 얻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용기로 밀어부친 우식에게 그녀를 빼앗긴다. 배우 권상우의 매력이 스크린 가득 담겨있어 그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하다.
우리영화에서 처음으로 빙벽을 영화에 담은 ‘빙우’는 산악멜로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캐나다 유콘주의 화이트 패스와 르웰린 빙하지대에서 촬영된 산악 장면의 웅장함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캐나다의 아시아크라는 산을 등반하려는 캠프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대학 산악부 출신 친구들과 등반을 하려는 중현(이성재)의 캠프에 같은 대학 야구부 후배인 우성(송승헌)이 합류한다. 등반 도중 조난이 된 중현과 우성은 자신이 사랑한 한 여자와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이야기 도중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여자가 같은 사람인 경민(김하늘)임을 알게된다. 우성에게 경민은 대학 진학 후 우연히 만난 소꼽친구인 짝사랑 상대. 반면 유부남이었던 중현은 경민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키워나간다.
인터넷 소설을 스크린에 옮겨담은 ‘내 사랑 싸가지’는 딱 10대들 취향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문자메시지, 핸드폰 동영상 메일 등 10대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기에 여고생들이 환호할만한 ‘왕자님’을 등장시킨 것도 10대들의 입 맛에 꼭 맞는 설정이다. 톡톡 튀는 대사와 연기가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영화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고생 강하영(하지원)은 잘못 걷어찬 깡통 때문에 명문대 법대생 안형준(김재원)의 외제차 범퍼에 조그만 상처를 낸다. 그러자 형준은 돈이 없다는 하영에게 차 수리비 300만원 대신 하루 일당 3만원으로 쳐서 100일간 노비계약을 하는 조건을 제시한다. ‘싸가지’ 없는 ‘쥔님’의 괴롭힘은 극에 달하지만, 어느새 노비와 쥔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가족들이 함께 볼 만한 영화=피터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영화로 만들어진 ‘피터팬’과 월트디즈니에서 내놓은 애니메이션 ‘브라더 베어’는 어린이들과 함께 봐도 좋다.
원작에 가장 충실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피터팬’은 웬디의 성장통과 피터팬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그동안 디즈니 만화영화의 어린이용 모험담이나 스필버그 감독의 ‘후크’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어색할 수 있다. 고모에게 ‘이제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한다’는 말을 들은 날, 웬디(레이첼 허드우드)는 창문으로 날아들어온 피터팬(제레미 섬터)을 만나게 된다. 영원히 늙지 않는 ‘네버랜드’로 가자는 유혹에 넘어간 웬디는 두 남동생과 함께 피터팬을 따라간다.
월트 디즈니에서 ‘라이언 킹’ 이후 10년만에 내놓은 생명드라마 ‘브라더 베어’. 이 영화는 라이언 킹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이야기의 중심인 ‘곰’을 제외한다면 구성과 감동을 이끌어가는 방법이 꼭 라이언 킹을 보는 것 같다. 형 시트카를 죽음으로 몰고간 곰을 죽인 막내 키다이. 하지만 시트카는 키다이를 곰으로 만들어 버린다. 왜 자신이 곰이 됐는지 모르는 키다이는 수다쟁이 어린 곰 코다와 함께 형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산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결국 곰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마음을 알게된 키다이는 인간의 생활을 포기한다.
◇볼만한 외화=‘페이첵’은 ‘영웅본색’ ‘페이스 오프’ 등으로 유명한 홍콩 출신 오우삼 감독,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 필립.K.딕, ‘진주만’의 벤 애플릭과 ‘킬빌’의 여전사 우마 서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이 출연하는 영화다. 기억상실증을 소재로 한 ‘메멘토’류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택하는 것도 괜찮다. 하이테크 기업의 천재 분해공학자 마이클 제닝스(벤 애플릭)는 기업의 단기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기업기밀 보완정책에 따라 ‘기억제거 프로그램’에 의해 기억이 제거된다. 어느날 그에게 3년간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엄청난 금액의 보수(Paycheck)를 제안받는다. 하지만 3년 후 그에게 남은 것은 돈대신 쓸모없는 물건 뿐이었다.
/ pompom@fnnews.com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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