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고객 잡는 ‘미끼상품’ 마케팅/주장환 유통부장

주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4.12 11:02

수정 2014.11.07 19:18


어린시절 아득한 정적을 멀리 두고 꽃구름 둥실거리는 여름날 오후 아이들과 함께 모기장으로 만든 매미채를 들고 산으로 들로 나서길 놀이삼아 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를 뒤로 하고 숲으로 들어서면 그제야 수십만마리의 매미가 나무란 나무에는 모두 붙어 맴맴맴 울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이 여름의 절정은 ‘오다리’를 잡는 일이었다.

보통 잠자리보다 크고 늘씬하게 잘생긴 오다리는 왕잠자리의 일종이었다.

무엇 때문에 오다리라고 불렀는지 모르지만 일본말이 아닌가 한다. 일어 ‘おお(오오)’가 ‘크다’란 말이거니와 아마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난 이 오다리를 잡기 위해 두가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하얀 실이고 다른 하나는 노란호박꽃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송사리, 올챙이, 물달팽이, 우렁, 미꾸라지, 물벼룩, 장구벌레, 소금쟁이 등이 지천을 이루는 작은 연못들이 산속에 있었다.

이곳에 여동생을 데리고 가 오다리를 잡으면 여동생의 손가락 사이에 오다리의 날개를 접어서 끼워 넣곤 했다. 그래야 날개가 상하지 않고 오래 살아 있는 것이었다.

오다리를 잡기위해 사용하는 것이 실과 노란호박꽃이다. 수놈은 몸이 파랗고 암놈은 노랗다.

수놈을 한마리 잡아서 다리에다 실을 묶고 몸통에 노란호박꽃으로 노랗게 칠한 다음 공중에서 천천히 돌리고 있으면 어느새 암놈으로 착각을 하고 수놈들이 떼를 지어 몰려온다.

잠자리가 꽁무니에 따라붙어 교미를 시도하려 하면 슬그머니 땅에 안착시켜 가짜 암놈에 정신 나간 수놈을 잡는 것이다. 이런 미끼를 사용해 오다리를 잡을 때마다 내 가슴은 뭉실뭉실 커갔다. 마치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백화점의 미끼상품은 불확실성과 매출부진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경영학에서 로스 리더( loss leader)라 불리는 이 전략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많이 나타났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대형할인점으로 몰리게 됐고 이에 놀란 백화점들이 미끼상품인 치약, 라면, 비누 등 일용용품을 이용해서 고객을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97년 가을에는 배추가 오다리역할을 했다. 백화점 식품매장에는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당시 1000원가량하던 배추 한포기를 500원에 팔았던 것이다.

이는 산지보다 더 낮은 가격이지만 효과를 발휘했다.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미끼상품에서는 손해를 보았지만 그 손님들이 다른 상품을 열심히 구매해 갔기때문이다.

평균 한 사람당 5만원 이상 쓰고 간다는 통계에서 보듯 미끼상품은 좋은 마케팅전략이다.

백화점마다 미끼상품을 내놓고 판촉을 하다 보니 미끼상품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다른 요일에 비해 싼 특가상품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요일별 특가상품전은 지금은 슈퍼마켓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예를 들어 월요일 채소, 화요일 달걀, 수요일 건어물, 목요일 생선, 금요일 과일, 토요일 정육 등이 특가미끼상품의 본보기다.

요사이 웬만한 음식점에는 커피자판기가 거의 다 있다. 누구나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도 매출증대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밥먹고 커피 따로 마셔야 성이 차는 사람들이 다방에 가야 할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이런 음식점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런 곳이 없지 않지만 몇년 전만 해도 음식점 화장실은 손님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가고자 하면 주인이 주는 열쇠꾸러미를 들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수줍은 19세 처녀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음식점 건물에서도 화장실을 개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신종 생리미끼상품이라고 해야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최근 경기불황이 옛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잔술을 파는 주점이 생기는가 하면 소주 한 병에 100원, 혹은 갈비를 먹으면 소주나 냉면을 공짜로 주는 음식점도 늘어간다. 개비 담배는 70년대 추억의 상품이다.

오뎅집이나 만화방 같은 곳에서 한 개비씩 사서 피우던 추억을 오늘에 되살리는 곳이 생겼다. 직장에서는 도시락 싸오는 사람들이 늘고 중국집 자장면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400원대 저가품 라면이 인기라고 한다.

롯데�^신세계�^애경백화점은 식기, 주방용품, 생활잡화 등 40여개 품목을 1만원에 판매하는 ‘1만원숍’을 열고 있다. 웨스트우드 바지, 지오다노 티셔츠, 가우디 지갑, 백산 샤틴 수저 10벌세트, 셰프라인 전골냄비 등 품목도 다양하다.

현대백화점은 얼마 전 구두를 최고 90%나 할인 판매했으며 각 유통업체에서는 매출증대를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4만원짜리 구치 지우개가 서울 강남 어린이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오다리는 이미 하늘로 날아가고 없는데 나 혼자 주책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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